하룻밤만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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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72014
 

하룻밤만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 동화책 버전 —

때와 장소는 중국 진나라 진시황시대

진시황은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이후에 있을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위해

만리장성을 축조하고, 자신의 호화스럽고 영원한 삶을 꿈꾸며 아방궁을

세우면서 백성을 생활고의 도탄에 빠뜨리고 있었다.

당연히 전국 곳곳은 도적과 유랑민으로 흉흉한 상황에 처해졌다.

이때에 낙양성에 살고있던 한 젊은이도 과다한 세금과 탐관오리의 횡포에 못견디어

유량의 길을 선택하고 개나리봇짐 하나만 달랑메고 정처없는 길을 나서게 되었다

고향을 등지고 도망쳐온 신세이니 갈곳이 정해지지 않음은 당연할 것이니

무작정 걷고 또 걷다보니 어느덧 해는 저물고 깊은 산중에 갇히게 되었다

산짐승 울부짖음에 겁에 질려 발걸음을 무겁게 옮기던중 저 멀리에 불빛이

눈에 들어 한걸음에 줄달음쳐 그 불빛이 새어나오는 마을 어귀에 도착하니

10여채가 평화로이 모여있는 작고 아름다운 산촌이었다.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간에 유일하게 작고 초라한 초가집 문틈새로 불빛이

가늘게 새어나오는 집안으로 들어서려는데 너무나도 가슴을 저미는 듯한 애처로운

여인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젊은이 자신이야 세상이 흉흉하여 고향을 등지고 도망쳐 나온 신세이니

그 무슨 사연인지 한번 알아나 보자는 심정으로 사립문을 밀고 들어섰다

“주인 계십니까? ”

몇번을 부르니 방문이 열리면서 애처로이 흐느끼던 소복을 단정히 입은 여인이

밖으로 나왔다.

“길가는 나그네 올시다. 날도 저물고 허기에 지쳐 찾아왔으니 하룻밤만 묵어가게

도와주십시오”라며 정중히 청을 했다

그러자 그여인은

“미안하지만 저희집은 우환이 들어 그러하오니 옆집으로 가보시죠”하고는 돌아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저는 낙양성에 살고있는 사람이온데 세상이 흉하여 고향을 등지고 유량을 하고

있읍니다. 제발 뿌리치지 마시고 헛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 이슬이라도 피하도록

도와 주십시오”하고 애타게 애원하자, 여인은 젊은이를 방으로 들게했다.

젊은이가 발으로 들어서니 방안에는 80세도 더되보이는 늙은이가 자리에 누워

짙은 눈물방울을 얼굴에 묻힌채 누워있었다

젊은이는 자리에 앉아서 노인에게 공손히 감사의 예를 취하고나서

왜 두분이 그렇게도 슬피우는지를 물었다

노인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듯 헐떡이며 분한듯 자리에서 겨우일어나 앉아서

“내가 나이 60에 첫딸을 얻어 고생 고생끝에 저딸이 20살이 되도록 금지옥엽

키워났더니 우리고을 탐관오리가 내딸을 자기의 첩으로 달라지 뭡니까 그래서

단호히 거절을 하였더니 80이 넘은 노인을 만리장성 부역군으로 차출해 보내

버리지 않았읍니까. 내일 아침이면 만리길을 걸어서 만리장성 축조장으로 끌려

가는데 여기서 만리길이고 보면 가다가 죽을것이 필경인요, 부역기간이 10년인데

내나이 80에 어찌다시 내딸과 만날수 있겠소 그래서 우리 두 부녀는 이별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중입니다”라고 겨우 겨우 말끝을 이어가며 자기의 처지를 이야기 했다

세상살이 고달프고 탐관오리의 횡포에 고향떠난 자신의 설움과 두 부녀의 서러운

사황에 젊인이도 부녀도 통곡을 하다 젊은이는 기왕 자기야 할일없이 떠도는 인생

내가 저노인 대신 부역에 가면 저 두 부녀는 평생을 행복하게 살지않겠가는

생각이 들어 자기가 대신 부역을 가겠으니 행복하게 살라고 제의했다

그러자 두 부녀는 극구 반대를 했다. 아무런 인연도 없는 젊은이를 사지로

내몬다는것은 하늘이 노할일이라며 노인이야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자기가

가는것이 도리라고 부인했다.

이렇게 밤이 가느눌도 모르고 세사람이 등불아래서 다투고 있을 때 첫닭이

꼬끼오하고 울었다. 그때 여인이 꾀를 내었다.

“그럼 당신과 저와 둘이서 부부의 인연을 맺으면 우리 아버님이 당신아버님도

되니 당신이 대신 부역을 가도 되겠군요. 미천하나만 저를 거두의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시기를 당부드림니다”라고 말했다.

새사람은 좋다고 동의하고 두사람은 혼인언약을 하늘에 맹세했다

이에 하늘에 둥근달은 두부부의 탄생을 축복하듯 은색 달빛을 주위에 내려주고

새벽녘 산새들도 축가를 소리높여 불러 주었다.

감동한 덩치큰 뒷산도 물끄러미 달아래 묵묵히 지키고서서 두언약을 축원하면서

긴 산그림자만 드리우고 서있었다.

그날밤 혼인을 치른 젊은이는 다음날 장인을 대신하여 만리장성을 쌓으려 길을

떠났다. 이후 세상사람은 아름다운 이 두부부의 혼인을 두고

“하룻밤만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었으며

우리도 이말을 무슨 뜻인지 잘모르고 쓰고 있다.

 Posted by at 10:57 AM

남자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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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72014
 

여자가 늙어서 꼭! 필요한것
1 돈
2 딸
3 건강
4 친구
5 찜질방

남자가 늙어 필요한것
1 부인
2 아내
3 집사람
4 와이프
5 애들엄마

여자는 남편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에 충격…

 

 

 

☆와이프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
1. 안아준다
2. 뽀뽀한다
3. 명품백을 사준다
4. 요리한다
5. 청소한다
6. 처가에 잘한다
7. 같이 쇼핑한다
8. 함께 여행을 간다
9. 사랑을 속삭인다
10. 연락을 자주한다
11. 결혼기념일을 챙긴다
12. 어깨주물러 준다
13. 빨래한다
14. 아내의 고민을 들어준다
15. 일찍귀가한다

…….기타 약 500여가지

☆ 남편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
1. 먹인다
2. 재운다
3. 가만히 둔다.

 

 Posted by at 10:55 AM

잘나가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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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72014
 

어제 마눌과 옛날 얘기를 나누다가…

마눌: 나도 옛날에 잘나가는 여자였다고… ㅋㅋ

나: 그래서 지금도 집에 붙어있질 못하고 나돌아다니느라 바쁘구나? ㅎㅎ

 Posted by at 10:54 AM

진짜 강도는 과연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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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72014
 

은행 강도 이야기와 황당한 해석!

중국 광저우의 한 은행에서 …
두 형제 강도사건이 있었다.

은행 강도들은 은행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소리쳤다.

“움직이지 마시오! 이 은행 돈은
정부의 돈이고, 여러분의 목숨은
여러분의 것이니 조용히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모든 사람이 강도의 말에
예상 외로 마음이 편해져서
조용히 엎드렸다.

<#1 이건 바로 “일반적인 생각을
바꾸는 콘셉트 형성하기”>

강도라면 큰 패닉에 빠지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성공한 강도들!

그래도 한 늙은 여성이 갑자기
도발적인 행동을 하려하자,
강도는 그녀에게 말했다!

“어머님! 교양있게 행동하십시오!
말씀드렸듯이 당신을 해칠 이유도,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2 이건 바로 “프로다운 냉정함
유지하기”>

그들은 평소 연습하고 훈련받은대로
어떤 상황에도 돈을 가져오는
목적에만 집중, 냉정함을 유지했다.

그 결과, 두 강도 형제는
무사히 돈을 갖고 나올 수 있었다.

그들은 집에 돌아와서,
강도 동생(MBA 출신)은
형(중학교 출신)에게

“형님! 우리 얼마 가져왔는지
세어봅시다!”

“이런 바보 같으니! 이 돈을 세려면
얼마나 오래 걸리겠냐. 오늘밤 뉴스에서
얼마인지 얘기해줄거다!”

<#3 이건 바로 “경험의 중요성”>

경험이 시험 성적이나 독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유다.

강도들이 은행을 떠나고
은행 매니저는 상관에게
경찰을 빨리 부르자고 했다.
그러자 상관은

“잠깐!!! 일단 10억은 우리 몫으로
빼놓고, 70억은 지금까지
우리 횡령했던 것을 매꾸자”

<#4 이건 바로 “파도 향해 헤험치기”>

위기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의미한다.

상관이 말했다.
“매달 강도가 있었으면 좋겠고만!”

다음날,,
TV뉴스에서는 은행에서 100억이
강탈되었다고 보도했다.

강도 형제는 이상해서 세고 또
세어봤는데 총 20억원 정도였다.

강도 형제는 매우 화나, 불평했다.
“우린 목숨 걸고 20억원 벌었는데,
은행 매니저는 손가락 하나로
80억을 벌었구나”

<#5 이건 바로 “시스템을 아는 지식은
황금만큼 가치있다!”>

은행 매니저와 상관은 즐겁고
행복했다. 주식으로 큰게 손해 봤던
모든 손실을 이번 강도사건을
통해 해결했기 때문이다.

<#6 이건 바로 “위기는 곧 기회!”>

위기를 과감히 이용해
기회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진짜 강도는 과연 누구일까요?

 Posted by at 10:53 AM

사과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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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72014
 
예쁜 처녀가 과일 가게에 들러
‘이 사과 한 개에 얼마예요’ 하고 물었습니다.
주인은 사과 한 개에 뽀뽀 한 번이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예쁜 아가씨는 열 개만 달라고 말했습니다.
주인은 사과 열 개를 봉투에 담고 삐죽이 입술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아가씨가 말했습니다.
계산은 쫌 있다 우리 할머니가 와서 해 주실 거예요.
 Posted by at 10:52 AM

소치 동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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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72014
 

부페한 러시아의 수치 올림픽.
기대하라. 다음 올림픽인 평창 올림픽에서는 훨씬 강력해진 한국식 부페를 맛보게 될 것이다.

 

소치 동계 올림픽 피겨 러시아 심판진 이름 공개합니다~

시블르므시키~
이느무스키~
개느므스키~
미치느므스키~
나쁘너므스키~
썅노므스키~
개카트노므시키
개뼈닥구가트므시키
콱패주고시프니노므시키
팍쥐기고시프니노므시키

ㅎㅎㅎ

 Posted by at 10:51 AM

자본주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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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72014
 

[한겨레21][표지이야기] 난공불락의 1 대 99 사회가 만들어진 역사
문제는 분배, 이제는 ‘그들’의 자본주의를 그들의 손에서 가져올 때

‘그들의’ 자본주의가 위기다. 회복의 소문만 무성할 뿐, 6년이 지난 지금도 위기는 진행형이다. 자본주의도 사회적 생물체이니 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거대한 공장, 굴뚝 연기, 그리고 노동의 땀으로 버무려 만든 산업혁명이 마무리되던 19세기 말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있기 전까지 자본주의의 호시절이 있었다. 풍요의 노래가 흘렀다. 영국에서는 대영제국에 걸맞게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시대‘라 했고, 프랑스에서는 풍요를 문화적으로 승화해 ‘아름다운 시대'(La Belle Epoque)라고 불렀다. 미국의 성공이 유난히 두드러졌다. 화려한 만큼 졸부의 그림자도 생겼다. 그래서 마크 트웨인은 모든 것에 금박을 입혀 부를 과시하는 ‘금박 시대'(Gilded Age)라고 비꼬았다.

물건은 넘치지만 살 사람이 없다

이런 풍요 속에 숨겨진 과잉과 불균형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의 참화를 통해 드러났다. 생산만 늘어나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는, 산업혁명 이후 지속돼온 기술 및 생산 낙관주의에 처음으로 의문이 생겼다. 스스로 만든 늪에 빠진 ‘자본주의 일병’을 구해내려 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생각한 자본주의 구출기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생산능력이 천문학적으로 팽창해 시장에 물건이 넘치지만, 정작 그 물건을 살 사람이 없다는 게 경제문제의 요체라고 그는 믿었다. 생산수준에 걸맞게 만인의 소득수준이 올라가서 소비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하고, 이런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이 곧 사회와 정부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기업은 이를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자동차 대량생산의 신기원을 열어젖힌 헨리 포드는 하룻밤 새 공장노동자의 임금을 2배 올림으로써 자신의 노동자를 자동차의 생산자이자 잠재적 고객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만신창이 지경인 그들의 자본주의에 대한 자신감도 되찾았다. 특히 20세기 초반, 케인스의 낙관주의는 16세기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닮아 있었다. 그의 손자 시대, 그러니까 우리 세대에서는 하루 3시간 노동만 해도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단언했다. 생산력은 충분하고 골고루 나눠갖는 ‘쉬운’ 문제만 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6세기 토머스 모어는 그의 손자 시대, 그러니까 우리 세대에서는 하루 3시간 노동만 해도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단언했다. 생산력은 충분하고 골고루 나눠갖는 ‘쉬운’ 문제만 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이런 고통을 통해 교훈을 얻었고 한때 자신감도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분배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본격화됐다. 무수히 자라나는 공산주의의 위협을 경계할 필요도 있었다. 기업과 노동이 합심해 자본주의를 운영해보자는 이른바 ‘포드주의적 사회협약’이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으로 도입됐다. 또 한 번 유례없이 생산력이 높아지고, 그만큼 임금도 늘었다. 노동생산성과 임금이 사이좋게 발맞춰 증가했다. 시민들은 노동자이자 소비자로서 발언권을 높여갔다.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품위 있게 살아가기 위해, 또 자본주의의 변덕스러운 경기변동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복지 체제가 만들어졌다. 그들의 자본주의에서 ‘우리’가 만난 시기였다. 마크 트웨인이 조롱했던 금박 입힌 자본주의가 아니라, 진짜배기 순금이 보이기 시작했던 시기다.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의 황금기'(Golden Age of Capitalism)라고 불렀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황금기는 잠시 빛날 뿐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도입이 그 신호탄이었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공산주의가 붕괴하고 세계화가 시대정신으로 등장함에 따라 그 여파가 뚜렷해졌다. 연대와 공존 대신, 자유와 시장이라고 쓰인 깃발이 도처에 날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자본주의가 돌아왔다. ‘시장 효율성’과 ‘고성장’이라는 기치 아래 복잡한 이론과 논리가 동원됐지만, 결국 그 핵심은 그들을 위한 분배 투쟁이었다. 임금에는 각박해지고 그들이 분담해야 할 비용은 모르쇠하면서 사회나 정부에 이를 떠넘겼다. 이러한 분배 투쟁에 걸림돌이 되는 간섭과 규제는 시장의 이름으로 결사반대했다. 동시에 공장 확장이나 기계 구입 같은 생산 투자보다는 쉽게 돈을 돌려 이윤을 늘리는 방법도 찾았다. 금융은 생산의 번잡함을 피하면서 돈을 불릴 수 있는 알라딘 램프가 되었다. 이게 금융의 진정한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라 걱정하는 이들에게는 훈계가 따랐다. 금융화란 새로운 경제 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며, 낡은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신개념이라 했다.

노동생산성은 2% 증가, 임금은 1% 증가

새로운 시대가 가져온 결과는, 그러나 전혀 새롭지 않은 것들이었다. 우선 노동소득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그만큼 자본소득은 늘어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경우, 총소득 중 노동이 가져가는 비율을 의미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은 2010년 기준으로 1970년대보다 1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일본에선 하락폭이 15%포인트를 넘었다. 생산과 노동소득의 균형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노동생산성은 1970년대 이후 약간 감소했으나 꾸준히 연평균 2% 전후로 증가했다. 하지만 임금증가율은 이에 훨씬 못 미쳐 1% 전후에 머물렀다. ‘임금 절약’을 통해 투자가 늘어나서 결국 노동자에게도 이익이 될 거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투자는 이윤 증가만큼 늘지 않았고, 투자되지 않은 이윤은 금융권으로 몰려들었다.

분배의 실패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전체적으로 줄어든 노동소득 몫이 개별 노동자들 사이에 분배되는 방식도 더 불평등해졌다. 엘리트 봉급생활자의 월급이 매년 치솟아오르는 반면, 하층 노동자에게 그런 봄날은 찾아오질 않았다. 미국에서는 하층 10%의 임금이 지난 20여 년 동안 줄어드는 기현상까지 생겼다. 봄날은커녕 매서운 한파였다. 유럽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보기술(IT)과 세계화로 무장한 ‘아름다운 시대’의 도래를 노래하는 동안, 빈곤층과 저임금층은 늘어났다. 고용이 곧 복지라면서 취업을 강권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일을 해도 빈곤한 경우가 늘어났다.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이를 문제 삼으면서 정부와 기업에 복지와 노동시장 대책을 요구하면, 그들은 성공한 1%를 가리키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성경 말씀을 인용했다. 그러나 이 말은 성경에 나오질 않는다.

노동소득 몫이 줄고 그마저 불평등하게 나누어졌으므로, 소비 수요에 비상이 걸렸다. 생산은 계속 늘어나는데 소비가 따라가지 못했다. 케인스가 일찍이 자본주의 고질병으로 걱정했던 이른바 ‘유효수요 부족’ 문제가 불거졌다. 그렇다고 그들은 소득분배의 균형을 바로잡으려는 정공법을 택하진 않았다. 그 대신 국내 소비력 제약으로 팔리지 못하는 생산물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거나, 가계에 싼 대출을 주선해서 소비를 부추겼다. 자연히 수출을 둘러싼 경쟁이 가열돼 전세계적인 불균형(Global Imbalance)이 심화됐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계부채의 급속한 증가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어느 쪽 방식이든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완전고용을 대체한 ‘고용 없는 성장’

완전고용도 사라졌다. 경제는 성장하지만 고용은 그만큼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완전고용을 대체했다. 중앙은행과 경제 담당 부서들도 공식 문서에서 ‘완전고용’이라는 단어를 슬그머니 지우기 시작했다. 한때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이 혼연일체가 되었던 미국에서도 1990년대 말부터는 경제만 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청년실업이 두드러져 정치·사회 문제로 등장했다. 복지 혜택이 지나쳐서 노동 의욕을 꺾는다며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비판도 높아갔지만, 먹기 위해 일을 찾는 이들에게는 정작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분배와 고용의 동시적 실패는 기업의 힘을 키웠다. 기업은 이렇게 강력해진 힘을 주저 없이 휘둘렀다. 과거엔 기업이 부담했던 비용이 정부와 사회에 전가됐다. 숙련과 직업훈련은 국가와 기업의 공조를 요하는 투톱 전술을 필요로 하는데, 숙련 기술의 혜택자인 기업은 관련 비용을 점점 더 정부나 개인에게 떠넘겼다.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명분하에 정부는 훈련비용을 더 많이 떠안게 되었고, 특히 대기업은 자체 훈련보다 중소기업에서 훈련된 직원을 데려오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기업의 ‘태업’이었다. 채용도 마찬가지였다. 능력과 잠재력이 있는 젊은이를 잘 살펴 뽑도록 채용 과정에 투자하는 것이 기업의 마땅한 도리지만, 채용비용은 갈수록 구직자들에게 전가됐다. 구직자가 경쟁적으로 스펙을 쌓아 스스로 가치를 입증해야 하는 본말전도가 생겨났다.

그들의 사회·경제적 기여는 이렇게 줄었음에도, 역설적으로 그들의 목소리와 영향력은 되레 커졌다. OECD 국가들의 평균 법인소득세는 1981년 49%에 육박했으나, 2013년 현재는 32%에 불과하다. 개인소득세의 변화는 더 두드러졌다. 한때 최고 세율이 70% 이상 육박했던 것이 지금은 대부분 40% 수준이다. 예전보다 훨씬 더 가져갔지만 훨씬 덜 내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의 힘이었다. 난공불락의 1 대 99 사회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런 분배 투쟁으로 그들의 부가 쌓여가는 만큼 그들의 자본주의는 위태로워졌다. 상위 1%가 가져간 소득 비율이 역사상 최정점이던 시기가 두 차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뒤를 이어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첫 번째가 193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이고, 두 번째가 현재의 위기, 경기대침체(Great Recession)다. 그들이 자초한 일이니, 결자해지를 기대했다. 십시일반으로 돈보따리를 만들어 안겨주며, 수습하는 일도 그들에게 맡겼다. 언성을 높이긴 했으나 멱살 잡는 일은 없었다. 경제를 위해 애쓴다는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는 볼멘 투정이 나올까 걱정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빈손만 내보인다. 오히려 당당해졌다.

‘분배의 재구성’은 곧 일의 재구성

그럼 어떡할 것인가? 결국 분배다. 우선, 분배 문제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비참함을 공평하게 나누는 경제이고, 자본주의는 축복을 조금 불평등하게 나누어가는 경제”라는 윈스턴 처칠 식의 고전적인 꼼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간 분배 개선을 마치 인위적이고 비시장적인 것이라 터부시해온 분배중립주의론은 역설적으로 가장 분배지향적이었고 ‘그들을 위한 분배’를 실질적으로 정당화했을 뿐이다. 분배중립적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토피아적이다.

분배 문제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비참함을 공평하게 나누는 경제이고, 자본주의는 축복을 조금 불평등하게 나누어가는 경제”라는 윈스턴 처칠 식의 고전적인 꼼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마이클 스펜서가 이끈 다보스포럼의 ‘현인 위원회'(Global Agenda Council on New Growth Models)는 지난 수십 년간의 불평등은 시장중심주의가 낳은 불공정한 결과라고 선언했다. 또 분배 형평성은 소득과 소비의 건실한 성장을 통해 안정적 경제를 이룰 수 있다고 인정했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위해서라도 이젠 분배를 중시하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기술주의적 해석을 제시한다. 컴퓨터가 주도한 기술혁명으로 불평등을 피하기 힘들고, 고용의 어려움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술혁명은 산업혁명 이래 자본주의의 숙명과 같은 것으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진정한 쟁점은 어떻게 기술을 사회와 경제에 이롭게 할 것인가 하는, 정책과 제도의 문제다. 그 옛날 산업혁명 시절에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기계를 파괴하려 했지만, 오늘날 노동자는 러다이트(Luddites·기계파괴론자)가 아니다. 신기술을 배우려는 기술순응주의자에 오히려 가깝다. 어느 때보다 기술 변화의 순효과를 극대화할 조건이 성숙돼 있다는 뜻이다. 기술혁신을 근거로 전파되는 숙명주의는 정책무위론의 손쉬운 핑계이기 쉽다.

‘분배의 재구성’은 곧 일의 재구성이다. 그들의 자본주의에서 노동의 변화는 심대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노동 개념으로는 오늘의 노동 일상을 아우르기가 힘들다. 노동의 세계도 고임금과 저임금으로 양극화돼 있고, 차별이 구조화돼 있다. 분배의 재구성은 여기서도 필요하다. 일해도 빈곤해질 수 있는 사회에서는, 시민들에게 여하한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소득 안정성을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 현금을 벌어오지 않지만 사회적 가치가 큰 활동도 ‘일’로 당당히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보조해줘야 한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복지에 맡겨서도 안 된다. 지난 30여 년 동안, 기업은 노동자에게 노동생산성에 못 미치는 ‘불공평한’ 임금을 지급했고, 이로 인한 생계의 어려움을 사회에 떠맡겼다. 즉, 노동시장의 분배를 바로잡는 게 급선무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소득분배 정책이 정치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어려워져서 종국에는 분배 정책 전체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

“운 좋은 자가 운 없는 자에게 부리는 횡포”

결국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정치가 문제다. 자본주의 경제를 위해 거침없는 목소리를 낸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자유방임 자본주의 원리가 영속적 평화의 첫 번째 조건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러셀은 이 말에 숨겨진 자유의 의미를 오래전에 간파했다. “자본주의 옹호자들은 자유의 신성한 원리에 자주 호소하려고 하는데, 이건 기실 한 가지 격언으로 구체화된다. 운 좋은 자가 운 없는 자에게 아무 걸림돌 없이 횡포를 부릴 자유를 의미한다.” 러셀의 단언은 다소 과장됐지만, 결국 자유의 형식적 존재가 아니라 그 내용을 보라는 경고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가 존재해 국민의 대표를 뽑는다고 해서 분배 형평성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대런 애서모글루와 그의 동료들의 연구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분배 개선을 해준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오히려 민주주의는 비대화된 부와 기형화된 권력에 포획될 수 있다. 한쪽으로 부가 쏠리면, 그 부를 기반으로 정치와 정부를 포섭하고 이를 통해 부를 증식하게 하는 정책을 유도해낼 수 있다. 형식화된 정치적 민주주의는 이렇게 경제적으로 비민주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들의 민주주의가 그러했다.

따라서 이제는 그들의 자본주의를 그들의 손에서 가져올 때다. 어렵고 낯선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자본주의는 불안하고 고통스럽다. 그들, 그동안 수고하셨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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