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 실존 알려주는 중국 사고전서 기록 밝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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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012011
 

중국 청나라가 국력을 기울여 편찬한 동양 아니 세계 최대의 총서로,
선진(先秦) 시대에서 청대 말기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주요 전적들을 가려 수록한 책만 무려 7만9000여권.

연인원 3000여명이 동원돼 무려 10년에 걸쳐 완성된 대작이다.
그래서 중국 학자는 물론 한국과 일본 학자들도 사고전서의 학술적 가치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 않을 정도다.

단군역사 언급 9종류 확인

바로 그 ‘사고전서’를 일일이 뒤져 단군에 대해 기술한 저작들을 처음으로 밝혀낸 한국인 학자가 있다.
민족문화연구원(이사장·강동민) 원장인 심백강 박사(47·전 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그 주인공.

“사고전서는 경(經)·사(史)·자(子)·집(集)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편찬된 체제입니다.

이중 단군의 역사에 대해 언급한 것이
– 자부에 3개, – 사부에 4개, – 집부에 2개 등

모두 9종류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 강단 사학자들이 외면하는 단군 역사를 중국 정통 역사서가 뒷받침해 준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최근 심박사는 중국을 수십 차례 드나들며 찾아낸 것들을
‘사고전서 중의 단군사료’(민족문화연구원 학술총서 제7집)라는 자료집으로 엮어냈다.

원서 그대로 수록한 이 책은 대중서라기보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자료 성격이 짙은데,
단군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대목을 네모꼴 모양으로 굵게 표시해 두었다.
그중 한 대목을 찾아 띄엄띄엄 읽어보니 매우 충격적이다.

“전부(錢溥)가 지은 ‘조선국지’에 의하면 세 종류의 조선이 있다.
하나는 단군조선이요,
또 하나는 기자조선이요,
나머지 하나는 위만조선이다….”
(‘산해경광주’ 18권)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가
단군이 B.C. 2333년에 조선(고조선)을 세웠다는 정도로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과는 달리,
이 중국측 기록은 고조선이 하나가 아니라 단군조선에서 시작해 위만조선에 이르기까지 세 단계의 역사를 밟고 있음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심박사는 더 흥미로운 사실도 지적한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널리 인정받던 단군의 실체가
일제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철저히 은폐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 조선을 속국으로 여겼던 명나라도 단군 역사를 교묘하게 가리려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고전서 집부(集部) 편에 역대의 부(賦)를 모은 ‘어정역대부휘’(御定歷代賦彙·청나라 때 편찬됨)라는 책이 있어요.

이중 단군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것이 조선부(朝鮮賦)라는 대목입니다.
저자는 명나라 효종 때의 동월(董越)이라는 사람인데,
조선에 사신으로 왔다가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고 또 관련 자료를 참고해 조선부를 지었다고 하지요.

아마 중국인의 입으로 단군조선을 직접 언급한 현존 자료 중 가장 시기가 앞선 기록일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고전서 사부(史部) 편에도 똑같이 실린 원래의 조선부에는 단군 기록이 쏙 빠져 있어요.”

“고조선은 하나 아닌 3단계 역사”

그러니까 명나라 때 처음 씌어진 조선부에는 단군 기록이 빠져 있는 대신,
그 후인 청나라 때 편집한 ‘어정역대부휘’ 안의 조선부에서는 똑같은 저자의 이름으로 단군조선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객관성과 권위를 따져볼 때 어정역대부휘가 단연 앞섬은 두말할 나위 없다.

심박사는 이를 두고
“명나라에서 우리 단군조선의 역사를 부정하려 했던 모종의 음모가 있었다

는 의심을 지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즉 동이족보다 그 역사가 짧은 한족(漢族)이 주도적으로 세운 명나라는 대국의 자존심상 동이의 후손인 조선을 깎아내려 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의 단군과 고조선 관련 사료는 명나라의 직접적 간섭을 받던 조선조 때 많이 인멸됐고,
이후 일제의 지배를 받으면서 거의 말살됐다는 게 심박사의 해석.

그러다 보니 강단 사학계 일각에서는 단군 역사를 실재로 인정하기를 거부해 신화로 취급하거나,
심지어는 고려 때 항몽전쟁이나 일제 때 항일민족주의 감정의 소산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는 것.

바로 그 때문에 ‘사고전서 중의 단군사료’는 중국의 문헌을 근거로 단군의 실재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심박사는 이 자료집 외에도 16∼17세기 문헌인 ‘조선세기’(朝鮮世紀)를 처음으로 발견한 학자로 유명하다.

명나라의 오명제(吳明濟)가 지은 이 책은 조선 영조 때 편찬됐다가 고종 때 중간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의 ‘역대서적’조에 제목만 전해져 오던 것이다.

지어진 지 4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빛을 본 ‘조선세기’는 특히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 등 삼조선의 역사를 차례로 소개하고 있는데,
위만조선부터 다룬 사마천의 ‘사기’나 기자조선 이후만 인정하는 대부분의 중국 사서들과 뚜렷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또 단군왕조의 시작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도 곰이 사람으로 변했다는 신화적 내용 대신 “가화합(假化合)을 이뤘다”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의문점 하나.

우리나라 학자들은 광복 50여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 고전 문헌에 산재한 단군 및 고조선 사료를 왜 찾아보지 못했을까.

심박사의 해석은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는 우리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 자주적 사관이 없었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한문 해독능력 문제를 꼽을 수 있을 거예요.
중국 원전을 해석하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아마 우리나라 역사학자 중 그런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세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것입니다.”

이렇게 단언하는 심박사는
한학자 집안에서 자라 5세 때 천자문을 독파하고 16세 이전에 사서삼경을 독파한 수재.

19세 나이에는 당대의 유명한 학승 탄허 스님을 만나 한문으로 문답을 나누는 등 뛰어난 한학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1983년 정신문화연구원에서 연구하다가 10년 만에 교수직을 그만둔 그는 현재 민족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한국 사학자들의 단군 및 고조선 연구를 돕기 위해 주로 중국측 사료를 체계적으로 수집 정리하고 있다.

 Posted by at 9:30 PM

한자(漢字)조차 또하나의 ‘한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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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012011
 

“한자(漢字)조차 또하나의 ‘한글’이다”

故 임승국 교수

(블로거의 글) 오늘 조선 닷컴 1면 ‘오늘의 블로그’ 에는 실로 역사적인 글이 하나 떴습니다. 바로 ‘한문과 한글은 누가 만들었는가’하는 글입니다. 밑의 글은 이에 화답하는 의미에서 띄우는 것으로, 영문학을 전공했음에도 백제사등 고대사 연구에 일생을 바친 선비이신 임승국 교수의 육성입니다.

꼿꼿이 목소리를 높이다 가신 님은 다시 뵐 수 없지만, 인터넷의 바다에서는 이 글이 마치 7,80년대 검은 기름종이 등사판에 긁혀진 시국 선언문 유인물처럼 젊은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해도 이전 말로 ‘지하’ 혹은 ‘재야’라는 단어속에 그냥 묻혀버리던 지난날과는 달리 인터넷과 블로그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이러한 쟁점들이 공개적인 논의의 장소를 찾은 것 같아 실로 기쁘기 짝이 없습니다. 그분의 3주기를 맞아 탈자 파자만 잇고 제목만 감히 ‘한자조차 우리 민족이 만든 또하나의 한민족 글자’라는 뜻에서 후학이 새로 붙입니다. (남산 딸각발이 배)

고쳐야 할 事大主義

시간이 조금 더 남았으니, 그럼 ‘똥되는 놈'(중국인, 뒈놈에 대한 고인 특유의 하대칭-블로거주)얘기를 조금 해 보겠습니다. 오늘 제가 자꾸 똥되는 놈이라고 해서 미안하지만, 국호문제에 있어서 ‘중국(united states of china)’이라고 부르면 안됩니다. 똥되는 놈이 우주의 가운데, 즉 태양이라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제후국(諸侯國)’이 됩니다.

이것은 아주 원초적인 사대주의 발상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 중국이라 하지 말고 ‘지나'(支那)라고 하면 됩니다. 이웃 일본인도 지나라고 하고 서양사람들도 차이나라고 하는데, 유독 우리만 중국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잘생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에 나와있는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라는 구절도 사대주의적 발상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글을 위해 평생을 살겠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한글만 우리 글자입니까? 아니 우리 역사가 몇년인데 한글만 우리 글자입니까? 우리 문화사가 500년밖에 안됩니까? 서양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니까 한자를 중국글자(Chinese character)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건 서양 중심의 가치관에서 하는 말이고, 이제부터의 세계는 우리 중심의 문화세계, 우리 중심의 가치관이 전개되어야 합니다. 저는 과거에 알파벳을 가르칠 때 영문학 교수였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백인종이 모여 세운 나라가 USA인데, 앵글로 색슨족이 주류족입니다. USC라고 하면 차이나를 말합나다. 똥되는 놈들 민족 가운데 주류족은 USA의 앵글로 색슨족에 해당되는 한족(漢族)입니다. 이 한(漢)은 민족의 이름도 나라의 이름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한테서 표절을 해 갔습니다. 한단고기(桓檀古記)할 때의 ‘한'(桓, 원음은 ‘환’)에서 한이라는 발음을 따 갔던 것입니다. 이 한(桓)은 원래 한족(漢族)이 아닙니다. 동이족(東夷族)입니다. 중국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 동이족입니다.

여기서 이(夷)자를 흔히 오랑캐라고들 합니다. 중국 25사 가운데 우리나라 역사를 기록한 제목이 동이열전(東夷列傳)인데, 여기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전부 다 나옵니다. 그러면 그 후손인 우리는 전부 오랑캐가 되어 버립니다. ‘나는 오랑캐 올시다’라는, 성은 오씨요 이름은 랑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북경 근처 만리장성의 설경. 진시황이 소위 기마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하지만, 실제 는 고조선(가깝게는 백제)의 고토를 그들의 영토로 뺏어놓고 지은 방어진이었다. 그러나 물리적인 성은 쌓을수 있었지만 그들이 막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말 곧 글자로 대표되는 문화(文化)였다. 이 ‘글자’와 ‘말’속에 한민족사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고 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들어있다.

고쳐야 할 사대주의 사상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세종대왕의 중국이라는 용어도 문제이지만, 이(夷)자를 오랑캐라고 훈을 붙인 옥편의 저자는 더 문제가 많습니다. 한문옥편의 원조가 되는 것은 허신(許愼)이 쓴 설문해자(說文解字)인데, 이 옥편의 역사가 약 2000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夷)자를 찾아보면, ‘동방지인야(東方之人也)’ 그 다음에 ‘고문인동(古文仁同)’이라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랑캐란 말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누가 이(夷)를 오랑캐로 말하면, 여러분들은 그들에게 ‘古文仁同'(옛부터 인이라는 말과 같이 쓰였다)이라는 한마디로써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동양오행철학에 의하면 木은 東, 火는 南, 金은 西, 水는 北, 土는 中央에 해당됩니다. 오행을 색깔로 말하면 東은 靑, 西는 白, 南은 赤, 北은 玄이고 中央은 黃입니다. 오상(五象)을 방위에 배치하면 仁은 東, 禮는 南, 義는 西, 智는 北, 信은 中央입니다. 동양철학 속에서 그 근거를 지니고 있는 글자인 仁을 오랑캐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동이족이야말로 중국대륙 가운데 가장 비옥한 땅에서 사는 민족이었고,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지역을 백제가 경영했습니다. 따라서 중국민족 가운데 가장 많은 민족이 동이족이고, 동이족은 즉 우리 선조들은 지나라는 연합민족국가를 형성한 원류(原流)입니다.

우리의 5000년 역사가 중국문화의 지류를 따라 흘러서 겨우 마시고 살아 연명해 온 역사라고 붓놀리는 사람들이 그따위 수작을 해 왔지만, 우리 민족이 과연 끊어질듯 끊어질듯 하면서도 목숨을 겨우 연명해 온 민족입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동양의 역사문화 속에서 질풍노도와 같이 군림한 역사문화민족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알맹이요, 핵심입니다. 이제부터는 반대로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백제의 최대영토(중국 25사 삼국사기 최치원조 등 종합)
[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기 때에 강병 백만으로 남으로는 오(吳), 월(越)을 침략하고 북으로는 유(幽), 연(燕), 제(齊), 노(魯)등지를 흔들어 중국의 큰 좀이 되었으며 수 황제의 멸망도 요동의 정벌에 의한 것입니다]
<삼국사기>‘최치원’조

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자는 지나의 글자가 아니라 우리 글자입니다. 약 4만 3천여 자가 옥편 속에 있는데, 글자 하나 하나마다 대개 발음기호가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學’자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우리는 ‘學’이라는 발음기호를 적었을테고, 지나인은 한글을 모르니까 자기네 발음기호를 적었습니다. 즉 ‘轄覺切’으로 표시되어있습니다. 여기서 ‘切’은 ‘轄覺切’이 발음기호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읽는 방법은 아주 간단한데, 첫글자에서는 자음(하)만 취하고 두번째 글자에서는 모음(가)과 받침(가)을 취해 읽으라는 뜻입니다.

[ha ( 轄 )+ ak (覺)= 학 (hak) 블로거주 ]

이렇게 ‘轄覺切’로 중국옥편에는 2000년동안 적혀 내려오고 있는데, 지나인(북경 사투리)은 ‘學’발음을 못하고 ‘쉬에'(xue)라고 합니다. 가,띵,밑으로 끝나는 글자를 사성 중 입성이라고 하는데, 지나인은 입성을 발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한문자(漢文字)는 지나인들이 제대로 발음할 수 없는 것이고, 한민족의 발음으로서만이 완벽히 소리낼 수 있는 것입니다. 100% 우리말로 적혀있는 것이 지나인의 옥편이고, 따라서 우리가 표준어를 쓰고 있는 한문자의 주인공입니다. 한글만이 우리문자가 아니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문자야말로 우리 문화와 전통을 지금까지 전해준 고마운 글자입니다.

 
(위부터 단군 가림토문자, 한글 훈민정음, 일본 신대문자, 인도 구자라트 문자, 몽고 파스파문자, 중국 갑골문자)

민족사의 르네상스를 위하여

정말 우리 문화의 본질을 정확하게 안다면 이제부터 한자에 대한 애착을 가져야 합니다. 마치 어떤 탕자의 비유마냥 말이죠. 백만장자의 아들이 아버지의 돈을 객지에서 다 써 버려서, 남의 돼지우리에 버린 밥껍질로 주린 배를 채우다가 하루는 탄식합니다.

‘나의 아버지집에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많이 있었건만, 나는 객지에서 헐벗고 굶어죽게 되었구나’ 하며 깊은 한숨을 쉽니다. 이런 탄식끝에 이 탕자는 아버지의 집을 향해 다시 힘차게 뛰어갑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맞으며, ‘내 아들이 다시 돌아왔노라’하며 양잡고 소잡아 축제를 엽니다. 그래서 탕자는 또다시 백만장자가 됩니다.

이제 상고사를 재확인하고 민족사의 바로 이것이 르네상스입니다. 옛집으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과연 그런 용기가 있습니까? 옛집을 기억은 하고 있습니까? 옛집이라는 것은 상고사입니다. 과제인 옛집으로 돌아가는 것, 마치 탕자가 자기 본래의 집을 향해 돌아가는 것처럼, 바로 이것이 한국사의 남아있는 과제입니다.

자기의 옛집으로 돌아가려면 우선 한문(漢文)을 알아서 민족의 전통을 확인하는 것이 첫작업이 될 것입니다. 한국사에는 목표가 뚜렷한 근원을 향해서 돌아가는 ‘민족사의 르네상스’가 일어나야 합니다.

만약 그리스와 로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없었고 이를 기술한 고전(古典)이 없었더라면, 인류역사상 저 ‘Renaissance’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본래 이 말의 어원은 ‘옛 정통(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그리스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되돌아갈 고향의 영광과 위대한 추억이 없는 민족, 향수가 없는 민족에겐 르네상스란 말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

* 임승국(林承國)교수. 고려대 영문학과 출신으로 경희대 영문학과 교수를 지내다 백제사를 고리로 한국고대사 연구에 나서 이른바 강단사학계와는 다른 길을 걸은 대표적인 ‘재야’사학자로 일컬어진다. ‘한단고기’의 역해자.

고 안호상 박사,박시인 전 서울대 교수 등과 함께 “국사찾기협의회”를 설립,기존 교과서가 단군 존재를 부정하고 한사군을 한반도에 설정하는 등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국회청원활동도 벌였다. 2001년 향년 74세로 작고. 지난 8월 28일은 고인의 3주기였다.

자료 출처: 삼태극 카페

 Posted by at 9:29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