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vs 노무현, ‘시대정신’은 어디로 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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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302011
 

대한민국 역사에서 5월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 달이다. 5월이 특별한 것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결정지은 사건들 가운데 상당수가 5월에 몰려있는 때문이기도 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가치를 대표하는 두 인물과 밀접하게 연관된 탓이기도 하다. 그 두 인물은 박정희와 노무현이다. 박정희는 5ㆍ16 군사반란을 통해 장기집권의 문을 열었고, 노무현은 5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 1위가 박정희였고, 2위가 노무현이었는데, 두 사람 간의 차이는 미미했다. 세대 별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긴 했지만, 여론조사결과를 보더라도 현재의 대한민국은 박정희와 노무현의 나라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박정희가 꿈꾸던 대한민국과 노무현이 이루려던 대한민국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박정희가 지향하던 가치와 노무현이 추구하던 가치가 삼엄하게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은 두 사람이 추구하고 꿈꾸던 가치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박정희와 노무현은 어떤 가치를 추구했던 것일까?

박정희 신화의 이면(裏面)

박정희 신화의 밑천은 박정희 재임 시에 달성한 경제성장이다. 50대 이상에서 박정희에 대한 지지가 압도덕인 것은 박정희 덕분에 대한민국이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믿음 때문이다. 유사파시즘-특히 유신시대-이라고 명명해도 이상하지 않을 박정희의 폭압적 독재조차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불가피했다는 대중들의 확신 앞에서는 결정적인 흠이 되지 않는다. 독재와 경제발전 사이에는 선택적 친화성이 있으며 경제성장을 위해 민주주의를 유보한 것이 한국만의 경험만은 아니라는 일부 학자들의 친절한 설명도 뒤따른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병행발전이 불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일뿐더러, 백보를 양보해 박정희 재임 시에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박정희라는 자연인의 혜안과 지도력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 될 것이다. 박정희는 경제성장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대내외적 조건 속에서 재임 기간을 보냈다. 대외적으로 보면 서구 자본주의가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미국의 군사적 보호 및 경제적 지원 속에서 국제 분업체제의 하위파트너 지위를 안정적으로 인정받았으며, 후후발국가로서의 다양한 이점이 있었다. 대내적 조건도 경제성장에 최적이었다. 한국전쟁 발발직전에 단행한 농지개혁으로 인해 산업화의 최대 걸림돌인 지주 계급이 사실상 소멸했고, 교육 수준이 높고 근면한 대규모 노동력이 존재했으며, 수백 년에 걸쳐 구축된 수준 높은 문화적, 조직적 자원들이 남아 있었고, 정부의 정책 결정과 집행을 조직적으로 방해할 만한 세력이 부재했다.

이와 같은 대내외적 조건들을 감안할 때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은 기적이 아니었고 박정희 개인의 역량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통해 대한민국을 접수할 당시 대한민국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준비를 마치고 출발선을 힘차게 박차고 나갈 참이었다. 경제성장률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박정희가 아닌 누가 집권을 했더라도 박정희 재임 시에 이룬 성취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경제성장을 이뤘을 가능성이 높았다.

더구나 박정희 통치 기간 중의 경제적 성과들은 치명적인 약점들을 내장한 채 달성된 것이었다. 고지가(高地價)와 고물가라는 정책수단을 이용한 외상경제의 채택, 노동 및 농업에 대한 극단적인 억압과 배제, 재벌 및 수도권ㆍ경상도 중심으로 경제체제를 재편해 기업간, 지역간, 산업간 극단적인 불균형 초래 같은 것들이 박정희 경제체제의 그림자였다. 문제는 박정희식 경제 체제가 지닌 모순들이 너무나 크다는 점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 경제ㆍ사회적 모순들은 기실 박정희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대한민국 국민들 대부분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요컨대 박정희는 경제발전에 최적의 대내외적 조건들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하고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편익을 누릴 수 있는 경제모델을 만드는 데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한편 박정희의 가장 큰 잘못은 쿠데타를 통한 헌정유린도,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제체제 구축도, 민주주의의 압살도 아니다. 박정희의 최대 과오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의식을 병들게 하고 노예화한 데 있다. 박정희는 18년에 이르는 장기 집권기간 동안 대한민국을 병영으로, 국민들을 병사로 간주하고 인간개조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추진했다. 박정희의 인간개조 프로젝트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정신 보다는 물질에, 과정 보다는 결과에 집착하게 되었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물신숭배자ㆍ경제동물ㆍ우승열패의 신도들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생존욕구와 약육강식이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 대다수는 물질적 풍요와 힘이 곧 정의라는 생각에 심취해 있다. 박정희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정신의 아들들로 만든 것이다.

노무현이 꿈꾼 사람 사는 세상

박정희에 비해 노무현은 모든 면에서 불리했다. 개혁을 추동할 세력도 미약했고, 지지기반도 취약했으며, 반대자들은 너무나 많고 강했다. 게다가 대내외적 경제조건도 우호적이지 않았다. 세계화로 인한 규정력은 결정적이었으며, 일국적 차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제한적이고 그 효과도 예전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은 박정희 시대의 후후발국가가 아니었다.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노무현은 분투했다. 반칙과 특권의 폐절, 정치 개혁, 사법개혁, 국가 균형발전, 남북관계 개선, 동북아 균형자 역할, 성장과 분배의 균형, 복지 인프라 구축 등이 그가 추진했던 과제들이다. 성과가 있었던 것도, 실망을 안긴 것도 있었지만, 대체로 추구했던 정책 목표와 방향들은 옳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재임 시 노무현은 사면초가 상태였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시장과 시민사회의 존재는 정부의 역할을 상당부분 규정했을 뿐 아니라, 보수를 대표하는 극우와 진보를 대표하는 관념좌파는 사안마다 노무현을 협공했다. 여기에 노무현 자신의 실책과 준비 결여-그는 정말 갑작스럽게 대통령이 되었다-가 겹쳐 사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집권 기간 내내 여당은 지리멸렬을 반복했고, 대통령의 지지율은 낮았다.

퇴임 후 노무현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불행히도 그 행복은 너무나 짧았다. 노무현은 집권세력과 검찰이 친 덫에 걸렸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되었다. 누구나 그를 비난했고 손가락질 했다. 노무현은 자진(自盡)으로 사태를 종식시켰다.

죽음 이후에 노무현은 복권됐고 그의 정신도 오롯이 살아났다. 노무현의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정의에의 추구, 공존, 존중과 배려, 헌신과 희생 같은 비(非)물질적 가치들이었다. 살아온 삶이나 추구한 가치 차원에서 볼 때 노무현은 박정희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은 자신이 믿고 추구했던 가치들을 통해서 대한민국이 정상국가가 되고 국민들이 행복하길 원했다. 그러나 그는 국민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삶과 죽음을 통해 자신이 지향했던 가치들을 국민들에게 보여줬을 따름이다. 노무현은 비할 데 없이 치열했던 삶과 비장한 죽음을 통해 인간적 존엄이 무언지를 증명했다. 육체는 스러졌지만 노무현의 사상과 가치는 고스란히 남았고 점점 더 힘이 세지고 있다.

두 정신의 각축은 계속되겠지만 앞으로도 박정희와 노무현이 남긴 사상과 가치는 국민들의 정신을 지배할 것이고 우위를 점하고자 경쟁할 것이다. 당장 내년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이 그 시험대가 될 것이다. 박정희는 주류세력의 전폭적인 지원과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의 존재, 박정희의 은혜(?)를 잊지 못하는 일부 대중들의 성원에 힘입어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국민들의 정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박정희가 남긴 정신의 유산들은-제도적, 물질적 유산들은 물론이거니와-사라질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박정희가 추구했던 가치와 지향은 퇴영적이고 폐해가 너무나 크다. 무엇보다 박정희 정신 안에는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존엄성이 없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522143803

 Posted by at 10:11 AM

허위와 위선의 대학등록금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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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302011
 

진보진영 일부에서 대학등록금 문제에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정말 단순무식하게 접근하는거 같아서 안타깝다. 지금 반값 등록금은 정부는 그저 세금으로 돈만 대라는 식이다. 사립학교가 등록금을 내리던 말던 상관없이…

몇몇 진보활동가들은 정부돈이 대학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대학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까지 말한다. 옛기 이 사람아, 그렇담 지금 학생들 학부모들이 수조원의 돈을 대학에 내는데 대학이 그들 말을 귓등으로 듣기나 하나?..어처구니가 없다

지금 반값 등록금 논의가 얼마나 허구인지 알려줄까? 지금 대학의 등록금을 그대로 인정하는 상황에서 대학 등록금 반값을 정부예산으로 지원하려면 해마다 10조원에서 15조원의 돈이 든다. 교육부 예산이 1년에 30 몇조원인데 이게 가능해?.

한나라당이 이야기하는 2조원 예산 추렴 어쩌고 가지고는 끽해야 40만명 정도 대학생에게 50% 장학금을 주는거다. 지금 대학생이 300만명인데 그럼 나머지 260만명은 어쩌라고?.그중에 집에 돈걱정 없는 사람을 50만명이라 치고 이들을 제외한다고 해도 200만명은?

난 진보진영이 대학등록금 문제를 정부재정과 지원에만 포커스 맞추는게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어차피 그런식으로는 일부밖에 안되..이건 진보진영이 맨날 이야기 해온 보편적 복지와도 상충되는 결과를 낳을텐데..이러다가 한나라당 전략에 휘말리는게 되지..

지금 대학등록금이 적정한가를 따지기 위해서는 학생, 교수, 시민, 정부가 모두 사학경영 이사회를 들여다 봐야 하는데 그거 하자고 만든 사학법을 결사반대하고 정권퇴진운동까지 한 사학재단에 왜 피같은 세금을 넣나? 차라리 그런대학 안가는게 맞지

대학생들도 머리깍고 울고 등록금 내려달라고 호소하지 말라. 딱1년만 전체 대학생이 등록하지마..한두사람이 그러면 대학이 피식하겠지만 전체가 다 그럼 등록금 분명히 내린다. 그리고 그 1년동안 정부가 학생들에게 공짜로 교육훈련을 시켜주면 되지 않을까

지금 대학등록금 반값 논쟁은 한나라당이 맨날 이야기 하는 가난한 학생들 몇명 구제하면 복지 끝!.. 이거 그 자체야..근데 왜 진보진영이 이런 깨춤에 같이 놀아나나?. 사립학교 경영투명성이 무조건 먼저고 그게 사회정의고 보편적 복지야..알겠어?.

모두가 정말 절실히 원해서 대학을 가는것도 아니고 그저 간판때문에 가는 사람이 절반을 넘고, 모든 대학이 교육수준이나 여건이 좋은것도 아니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현실에서 왜 다들 이게 마치 엄청나게 절실하고 당연한것처럼 위선을 떨지?. 세금이 썩어나?

대학등록금 문제에 관해서 우리사회가 정말 솔직하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야 합니다. 350개의 대학, 300만명의 대학생 과연 다 절실합니까? 정말 다 필요해요?.제발 위선 떨지말고 생각해보자구요.

현재 한국사회의 대학문제는 부동산투기 문제와 구조가 같다고 볼수 있다. 끊임없이 가수요를 일으켜 프리미엄을 높이는거다. 그래놓고 대출 늘리고 세금 집어넣자는 야그..이게 말이 되 도대체…

미국의 의료비가 왜 높은가? 모두가 가야할 병원의 건강보험을 사적영역으로 놨기 때문이다. 만일 대학이 모두가 가야할 필수교육기관이라면 그걸 사립대학에 맡긴다는 자체가 넌센스이다.

결국 우리는 과연 대학이 고등기관인지 아님 필수교육기관인지 그것부터 먼저 따져봐야 한다. 그래서 필수기관이면 국가가 다 책임지는 구조로 가고 고등교육기관이면 모두가 대학을 가야 한다는 발상을 버리게 다른 부분의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등록금 문제의 시발은 여기서 부터가 아닐까?

 Posted by at 10:08 AM

[퍼온글] Plan B가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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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72011
 

http://edta450.blogspot.com/2011/04/plan-b.html

Plan B가 없는 사회

교수님,
저는 생화학자입니다. 학자는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설명한다고 하지요. 기계공학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의 취향에 맞으실지는 모르지만, 요새 일어나는 일들을 제가 잘 알고 있는 언어로, 남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을 빌어서 해 볼까 합니다.
대장균이 들어있는 플라스크를 두 개 떠올려 주세요. 이 안에는 균들이 증식할 수 있는 영양소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이 플라스크를 따뜻한 곳에 두고, 적당히 흔들어주면서 하루정도가 지나면 플라스크가 대장균으로 우글우글하게 될겁니다.
자, 여기다가 작은 변화를 주겠습니다. 플라스크 하나에 페니실린*(사실 페니실린은 대장균에게는 잘 안 듣기때문에, 대신 동생뻘인 앰피실린같은 항생제를 씁니다. 뭐 편의상 페니실린이라고 하죠), 을 넣는 겁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네, 인류를 살린 기적의 물질이, 아마도 99%, 많으면 99.9%의 대장균을 죽여버릴겁니다. 하지만, 남아있는 1%, 0.1%의 균들은 내성이라는 걸 획득합니다. 페니실린이라는 독한 항생제가 있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우수한’ 균이 되는 거지요. 일단 이런 내성균들만이 살아남게 되면, 그 균들은 페니실린을 비웃듯이 플라스크를 가득 채울 정도로 번식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중등교육은 벌써 저 페니실린 플라스크의 구실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KAIST 입학생들은 이미 내성을 많이 획득한 상태지요. 그리고, ‘징벌적 등록금(저는 이 단어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작금의 상황을 잘 축약해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개선된’ KAIST 체계는, 또 다른 거대한, 페니실린이 잔뜩 들어간 ‘독한 플라스크’입니다. 이런 시스템에서, 입학사정관제의 비극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내성이 없이는 살 수 없는 플라스크에, 다른 방면으로의 뛰어난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페니실린 내성은 별로 없을 것 같은 몇몇 인재들을, 이미 내성을 가지고 있는 99%와 함께 집어넣고 잘 살아보라고 한 격이니까요.
대학은 페니실린 플라스크가 아닙니다
자, 원래의 플라스크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진짜 재미있는 실험은 이제부터거든요. 두 플라스크-정상균과 내성균-의 대장균들을 적당한 방법으로 표시를 한 뒤, 자연적으로 대장균이 우글우글하는 장소에다 풀어놓습니다. 하수처리장쯤이 좋겠네요. 그리고 일정한 시간들을 기다린 뒤, 얼마나 이 플라스크의 균들이 하수처리장을 장악하고 있는지 보는 겁니다. 과연 어떻게 될까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반대로, 페니실린 없는 배지에서 자란 균들이 자연상태에서 훨씬 더 잘 경쟁하고 살아남습니다. 제가 이 실험을 직접 해 보지는 않았습니다만, 내성균과 비내성균간의 경쟁에서, 선택압이 없다면 비내성균이 승리하는 경우는 상당히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획득된 내성이 ‘훌륭할수록’, 내성균들은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경쟁력을 더 크게 상실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내성균은, 내성이라는 생존에 유리한 강력한 무기를 획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결함균이기 때문입니다.
페니실린 내성균은 균 내부로 들어오는 페니실린-세포벽이 형성되는 걸 막아서 세포가 분열될 때 터져버리게 만듭니다-을 무력화시키는 효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강력한 무기지요? 하지만, 페니실린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환경이라면, 이 무기는 짐이 될 뿐입니다. 왜냐구요? 개개의 생물체에게 주어진 자원과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페니실린이 가득한 플라스크 안에서는 다른 생존에 덜 필수적인 요소들을 다 버리더라도, 페니실린 내성 유전자에만 매달린 균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KAIST의 졸업생들이 지금의 시스템과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지금 KAIST가 펴고 있는 다양한 정책들을 어느 정도 정당화할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불행히도(혹은 다행히도), 학생들이 학부를 졸업한 뒤 맞딱드리게 되는 환경은, 페니실린 잔뜩 들어간 또다른 플라스크가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하수처리장에 좀 많이 가깝다는 데에 지금의 문제가 있습니다. 공부 잘 하고 학점만 잘 받아서 인생 편히 잘 살 수 있으면, 그것도 뭐 좀 심심할지도 모르겠지만 훌륭한 선택이겠죠. 근데 KAIST의 구성원 모두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생존영역을 찾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플라스크 밖에서, 페니실린 내성은 별 쓸모가 없는 장식정도가 아니라, 생존성을 좀먹는 입니다.
대학의 학부과정은 완성된 인재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졸업생이 사회에 진출을 하건, 더 심화된 연구를 위해 대학원으로 진학하건 그들의 여정은 거기에서 비로소 시작입니다. 그들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주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필수적인 교양을 심어주는 것이 학부과정이 지향해야 할 목표입니다. 더욱이 창의적인 과학자를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국민의 세금을 쓰고 있는 KAIST는, 특정한 방향으로 선택압을 조절(또는 조작)함으로써 그들이 학점뿐만이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생존할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됩니다.
Plan B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
제 자랑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저도 학부때는 꽤 공부 잘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전공수업을 당겨서 듣고, 2학년이 끝날때쯤에는 졸업에 필요한 수업들은 얼추 다 채울만큼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겨우겨우 진도나 따라가면서 들었던 수업들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도대체 뭘 배우는 지도 모르겠고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방황했을 때, 학점 신경쓰지 않고 들었던 다양한 수업들이나, 대학생이기때문에 할 수 있었던 다양한 일들이 없었다면, 학점은 조금 더 잘 받았을지언정 아직도 계속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메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 만약 당장 학점이 빵꾸나면 수십만원씩 ‘징벌적 등록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졸업을 앞둔 화학과 학부생이 약대 전공수업을 기웃거리다가 C를 받는 시도따위는 해 볼 수 없었겠죠. 지금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도, 전공 공부와는 하등 관계없을 것 같은 ‘인간생명의 과학적 이해’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인간이 구성하고 있는 사회를 어떻게 하면 생물학의 수준으로 설명하고,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쉬운 말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배웠기 때문입니다. 요새 통섭이다 학제간 연구다 또 새로운 바람이 부는데, 어느 누구도 모든 분야에 처음부터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리고, 페니실린 플라스크는 generalist를(그리고 많은 경우에는 specialist도) 키울 수 없습니다.
어느새부턴가 우리 사회가 plan B를 허용하지 않게 바뀌어 왔습니다. 단순히 재도전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획일적으로 최고의 답인 plan A가 존재하고, 그 plan A를 따라가지 못한 사람을 낙오자 취급하는 사회에서, 그것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해야하는 것이 대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적 다양성이야말로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니까요. KAIST를, 오랫동안 몸담고 계셨던 MIT와 같은 수준으로 만들고 싶다는 교수님의 열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MIT가 학생들에 대해 높은 수준을 기대하고 있고, 학생들이 받는 부담감도 높으며, 자살과 같은 불행한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KAIST 학부를 MIT 학부처럼 만들고 싶다면, 우선 MIT에 jazz 전공과 연극 전공이 있고, 학생 동아리인 MIT orchestra는 해마다 수준급의 연주를 들려주며, MIT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교수가 전자공학이나 화학이 아닌 언어학의 거두로, 동시에 정부와 기득권세력에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치 않는 노엄 촘스키라는 사실부터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랫만에 바위에 쓴 글.

 

 Posted by at 12:28 PM

담쟁이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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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32011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Posted by at 9:39 PM

The Road Not Taken – 가지 않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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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32011
 

The Road Not Taken

Robert Lee Frost(1874~1963)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가지 않은 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피천득 번역

 

 

 

 Posted by at 9:37 PM

여러 가지 교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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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072011
 

질문을 하면 5분간 바보가 되지만 질문을 하지 않으면 평생 바보가 된다.

인간에게 있어서 고뇌에 복종하는 것은 치욕이 아니다. 오히려 쾌락에 복종하는 것이야말로 치욕이다.

천재는 바보로부터도 배울게 있고, 바보는 천재에게서도 배울게 없다.

지금 당신이 어떤 문제를 풀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공식을 몰라서가 아니라 인생을 공식에만 갇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수학이 아니다.

자신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안 사실은 그것을 할 수 없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 스피노자 –

승자가 즐겨 쓰는 말은 ‘다시 한번 해보자’이고, 패자가 즐겨 쓰는 말은 ‘해봐야 별수 없다’이다. -탈무드-

언어학자들은 ‘똑 같은 말을 만 번 정도 반복하면 현실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말이 입안에 있어 있을 때는 내가 말을 지배하지만 말이 밖으로 나오면 말이 나를 지배하게 됩니다. 말은 우리의 생각을 꿰는 하나의 틀이 됩니다.

역경을 거꾸로하면 경력이 됩니다. 역경이 있을때마다 지혜롭게 잘 이겨내면 사람들이 그것을 당신의 경력으로 인정해주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면 노력은 성공의 아버지이다. 노력 없는 실패는 좌절만 낳을 뿐이다. 언제나 새로 출발할 기회가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역경의 시기에 다가오는 기회를 잡자. -나폴레온 힐-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제가 만났던 한 사진 작가는 사진기를 내려놓고 저랑 3시간 동안 얘기를 했어요. 결국 제가 못 참고 왜 사진 안 찍냐고 물어봤어요. 그러자 자기는 그 사람과 친해진 다음에 사진을 찍는다더군요. – 안철수

성공에는 아무 트릭도 없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에 전력을 다했을 뿐이다. 굳이 말한다면 보통 사람보다 아주 조금만 보다 양심적으로 노력했을 뿐이다.-앤드류 카네기

안철수 – ‘기업가 정신’이란 경영자 마인드가 아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치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굉장히 많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해 그걸 결국은 이루어내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

사람에게 친구와 적은 모두 필요하다. 친구는 나에게 충고를 주고, 적은 경고를 준다. – 소크라테스

먼저 필요한 일부터 하시오. 다음에는 가능한(possible) 일을 하시오. 그렇게 게 하다 보면 갑자기 불가능해 보였던 일까지도 하게 됩니다. St. Francis of Assisi

“자기가 태어나서 세상을 전보다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인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에머슨)

“난 예수는 존경하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와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하트마 간디

기적이란 한사람의 도약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함께 동시에 내딛은 작은 발걸음이다. 난 바로 그 기적을 꿈꾼다.

이상은 이상일 뿐 현실과는 다르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상이 현실이 될 때 사회는 크게 진보한다.

1년 내내 햇빛만 있다면 그곳은 사막이 되고 만다. 구름도 끼고 비도 와야 한다. — 아라비아 속담.

마음 속에 이뤄진 일이 실제 이뤄지지 않을 수는 있어도… 마음 속에 이뤄지지 않은 일이 실제로 이뤄지는 법은 없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자로서 여러분들에게 전쟁에 출정하라고 명령하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고 있다.” – 故 노무현 대통령

“가장 비싼 외교가 가장 싼 전쟁보다 싸다” 송민순 전 외교장관이 강연에서 인용한 외교가의 격언

행복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땀흘려 가진것을 늘리거나 원하는 것을 줄이거나 또 한가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방법이 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늙지 않는다.(A W 피네로)

지난달에는 무슨 걱정을 했었지? 작년에는? 그것 봐라. 기억조차 못하고 있잖니. 그러니까 오늘 네가 걱정하고 있는 것도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닌 거야. 잊어버려라. 내일을 향해 사는 거야 !! – 생텍쥐페리 –

일어서라. 태어나자 마자 헤엄치는 물고기는 있어도 태어나자 마자 걷는 인간은 없다. 걷기를 배울 때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이 넘어져야 했던가. 실패의 아픔을 모르는 자 성공의 기쁨도 모르니니, 오늘의 실패를 디딤돌로 내일 기필코 성공에 이르도록 힘쓰라. – 이외수 –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프리드리히 니체)

당신이 원하는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고, 배운 것이 없다고 실망하거나 주저앉지 마라. 틀에 얽매이지 않는 발상과 의욕만 있다면 새로운 일에 도전할 자격이 충분하다. “당신이 가고자 하는 그 길을 가라!” – 이나모리 가즈오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교육이란 알지 못하는 바를 알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행동하지 않을 때 행동하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 마크 트웨인

사랑하면 닮습니다. 미워해도 닮습니다. 기왕 닮고 싶다면 사랑하면서 기쁘게 닮는 편이 낫고, 결코 닮고 싶지 않다면 미워하지 않고 닮지 않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실패한 자의 가장큰 고질병은 바로 ‘미루기’이다.

타인에 대한 시선과 말이 사나워지는 딱 그 만큼 자신에게는 관대해진다. 자신에게 인색해지는 딱 그 만큼 타인에게 관대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톨스토이-

비전을 가진 사람은 조그만 사과씨를 보면서 사과나무를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 열매를 사과 나무 숲을 연상합니다.

“내가 가진 부는 무한하다. 왜냐하면 나의 재산은 소유가 아니라 향유이기 때문이다”(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 생각도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 생각과 행동의 균형이 건강한 인격입니다.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독서하는 습관이 더 중요하다” -빌 게이츠- 독서는 꿈을 이루는 디딤돌입니다.

화가는 자신이 볼 수 있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릴 수 있는 것을 본다. – 에른스트 곰브리치

사랑은 여자를 급속도로 아름답게 만드는 고성능 화장품이다.

최악의 사태를 받아 들인다면 더이상 잃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은 이미 모든 것을 얻었다는 것이다! – 데일 카네기의《절망은 없다》중에서

변혁은 단칼에 역사를 만드는‘위인’의 과업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백성’의 집단적 성취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맥그리거 번스> 이를 일찍이 깨우쳤던 세종대왕께서 백성에게 한글을 선물하셨죠.

‘재능’(才能)과 ‘재주’: ‘재능’을 ‘재미’있게 발휘하면 ‘재주’를 부릴 수 있습니다!

호기심이 없어지면 그만큼 나이를 먹은 것이다.

“나랏일을 걱정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옳은 것을 찬양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후 전쟁을 시작하고,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전쟁을 일으킨 후 승리를 기대한다.

나는 아름답지 않은 웃는 얼굴은 본 적이 없다.

친구는 기쁨을 두배로 해 주고 슬픔은 반으로 해 준다. — 독일 시인 실러.

춤추라,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지 않는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순신을 너무 영웅화하지 말자. 무릇 군인이라면 누구나 이순신처럼 행동해야 하는거다. 자신의 본분을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못남을 감추기 위해 영웅뒤에 숨는다.

‘시간이 날때 공부하겠다고 말하지 말라. 아마 시간이 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승자의 율법> 유태인 격언.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자식이 철이 들만 하면 어버이는 이미 곁에 없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이 아니라 경쟁을 이기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을 꿈꾸며 오늘도 한 발 한 발 나아갑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법이 아니라 전쟁을 이기는 법을 가르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한 발 한 발 나아갑니다.

번데기를 찢고 나오는 나비가 안스러워 번데기를 살짝 찢어 나비가 쉽게 나오도록 도왔더니 쉽게 나온 나비는 날지 못하더라.

신은 우리에게 성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신은 다만 우리가 노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은 미래를 그리워 하고, 실패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그리워 한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아래서는 성장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아래서는 성숙합니다.

집채만한 파도를 보고서 처음엔 누구나 몸을 떨었을 것이다. 다들 앞다퉈 꽁무니를 빼던 어느 순간, 그것과 마주해 물결 위에 올라탈 생각을 한 이가 있었을 것이다.(서핑의 탄생); 휘몰아치는 바람, 그 앞에서 모두 머리를 조아릴 때 돛을 펴고 나아갈 생각을 한 이도 있었을 것이다.(범선의 발명); 그런 이들이 문 연 길을 따라 인류는 난관 속에서도 한걸음씩 진보했을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려면 Under.상대밑에 Stand.서야 합니다.

꿈을 팔로윙하라! 꿈이 나를 맞팔하리니…

“사랑이 식었습니다.” 아닙니다.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닙니다. 바람처럼 부풀었다가 바람처럼 빠져나간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입니다. 사랑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입니다.

군자는 자기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을 기뻐하고, 소인은 눈앞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한다. – 강태공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어떤 말을 만 번 이상 되풀이 하면 그 일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믿었다. 지금 당신이 중얼거리는 말은 무엇인가?

애당초 시도하지 않는 것이 진짜 실패다. 시도도 않고 노력도 않는 사람이 진짜 실패자다. 나는 쉽게 성공한 사람보다 시도하다 꺾인 이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리처드 브랜슨

이 세상에서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은 대부분, 이루어지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선언되었던 것들이다. – 미국 대법관 루이스 브랜다이스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는 모두 사회에 기여한다. 낙관론자는 비행기를 만들고 비관론자는 낙하산을 만들어 내니까. 중도론자는 비행기에 낙하산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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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가 말하는 나라가 망하는 10가지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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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42011
 

1. 법(法)을 소홀이 하고 음모와 계략에만 힘쓰며
국내정치는 어지럽게 두면서
나라 밖 외세(外勢)만을 의지하다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2. 선비들이 논쟁만 즐기며
상인들은 나라 밖에 재물을 쌓아두고
대신들은 개인적인 이권만을 취택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3. 군주가 누각이나 연못을 좋아하여

대형 토목공사를 일으켜 국고를 탕진(蕩盡)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4. 간연(間然)하는 자의 벼슬이 높고 낮은 것에 근거하여 의견(意見)을 듣고
여러 사람 말을 견주어 판단하지 않으며
듣기 좋은 말만하는 사람 의견만을 받아들여 참고(參考)를 삼으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5. 군주가 고집이 센 성격으로

간언은 듣지 않고 승부에 집착하여

제 멋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6. 다른 나라와의 동맹(同盟)만 믿고
이웃 적을 가볍게 생각하여 행동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7. 나라 안의 인재(人才)는 쓰지 않고
나라 밖에서 온 사람을 등용(登用)하여
오랫동안 낮은 벼슬을 참고 봉사한 사람 위에 세우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8. 군주가 대범하여 뉘우침이 없고 나라가 혼란해도 자신은 재능(才能)이 많다고 여기며
나라 안 상황에는 어두우면서 이웃적국을 경계하지 않아 반역세력(反逆勢力)이 강성하여
밖으로 적국(敵國)의 힘을 빌려 백성들은 착취하는데도 처벌하지 못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9. 세력가의 천거(薦居) 받은 사람은 등용되고,
나라에 공을 세운 지사(志士)는 내 쫓아 국가에 대한 공헌(公憲)은 무시되어
아는 사람만 등용되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

10. 나라의 창고는 텅 비어 빛 더미에 있는데 권세자의 창고는 가득차고
백성들은 가난한데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서로 이득을 얻어
반역(反逆)도가 득세하여 권력을 잡으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

http://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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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인터뷰·下] “삼성, 李씨 3세 세습 용인하고 받을 것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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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042011
 

‘장하준 열풍’이 계속 진행 중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경제학)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김희정·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 <23가지>)는 두 달 만에 26만 부가 팔렸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상반기 안에 50만 부 이상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될 전망이다.

장하준 열풍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지난 8월 영국에서 처음 책이 나오고 나서 4개월 동안 독일, 한국, 네덜란드에서 출간된 데 이어서 2010년 연말에는 일본에서 책이 나왔다. 1월 초에는 미국에서 책이 나올 예정이고 중국, 타이, 타이완, 러시아, 루마니아, 터키 등에서 번역·출간이 준비 중이다.

장하준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책을 통해서 제기된 몇 가지 쟁점을 놓고 자신의 견해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특히 장 교수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인 삼성과 같은 재벌을 통제하는 방안을 놓고 ‘주주 자본주의’를 내세우는 일부 시민단체의 대응을 강하게 비판하며 다른 관점의 대응을 주문했다.

장하준 교수는 삼성 문제를 놓고서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전제한 뒤 “이 씨 일가가 그렇게 경영권 세습을 원한다면 그것을 들어주는 대신에 노동조합 허용, 정부·노동조합·시민단체 등의 이사회 참여, 일정 기간(10년)이 지난 후 경영 성과 평가 등을 요구하는 것 등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장하준 교수는 “삼성이 마음에 안 들면 차라리 ‘국유화’를 하자고 요구해야지 왜 그 뒤에 마약 밀매 조직이 있는지, 아프리카 독재자가 있는지 모를 외국 투기 자본에게 넘길 위험을 감수하느냐”며 “삼성을 사회가 통제하면서 장기적으로 국민 경제에 득이 되는 기업으로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하준 교수는 이밖에도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 독재는 경제 성장을 위해서 불가피했나’ ‘중앙은행 독립이 맞는가’ ‘관치 금융은 악인가’ ‘주주 자본주의는 왜 문제인가’ ‘경제 성장은 지속 가능한가’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나’ 등의 쟁점을 놓고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장하준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12월 26일 저녁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호텔에서 약 두 시간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장 교수와의 인터뷰를 한국 사회의 현안과 책을 둘러싼 쟁점으로 나눠서 두 차례 싣는다. 이 인터뷰에는 <프레시안>이 <23가지>를 읽은 독자로부터 받은 스물세 가지 질문이 포함돼 있다.

(☞관련 기사 : [장하준 인터뷰·상] “주가 2000? 갈 곳 없는 ‘투기 자본’의 작품이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장하준 열풍’, 그 이유는 무엇인가?

프레시안 : <23가지>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23가지>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장하준 :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2007년에 펴낸 <나쁜 사마리아인들>도 2008년에 국방부가 불온서적으로 지정해서 많이 팔렸다. 그런데 <23가지>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한창 팔릴 때와 비교하면 7~8배 정도 빨리 팔린다고 한다. 출판사도 당황한 상태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프레시안 : <23가지>가 2010년 연초에 나왔더라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제치고 2010년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인기를 얻는 이유를 따져본다면?

장하준 : 2007년에 펴낸 <나쁜 사마리아인들>도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둔 것이기는 하지만, <23가지>는 기획 단계부터 그 책보다 더 많은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신경을 썼었다. 예를 들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주로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 문제를 염두에 둔 책이지만, 이 책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독자들 모두가 관심이 있는 훨씬 더 많은 주제를 다뤘다.

또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한 장이 몇 십 쪽인데 <23가지>는 스무 쪽이 넘지 않도록 했다. 글쓰기 스타일도 훨씬 더 대중을 염두에 두고 쉽게 쓰려고 노력했었고.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런 폭발적인 반응이 설명이 안 된다. 내 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큰 인기를 끌었던 것까지 염두에 두면 대강 이유가 짐작이 된다.

한국의 독자들이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에 한국 사회가 가는 방향에 대해서 근본적인 회의를 느끼는 듯하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어서 이명박 정부까지 적극적으로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 나타난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이런 생각이 확산된 것이다. 그걸 대신할 새로운 것에 대한 갈구가 이런 반응의 이유가 아닐까?

프레시안 : <23가지>는 2008년 금융 위기에 대한 장하준 교수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장하준 : 그렇다. 이 책이 나오게 된 사정을 간단히 설명하면, 2008년 금융 위기가 진행되자 영국에 있는 에이전트(아이반 멀케히)가 새로운 책의 집필을 제안했다. ‘그간 당신이 언급했던 금융 중심의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모순이 폭발한 게 바로 금융 위기니까, 이것을 주제로 책을 한 권 쓰자’ 이런 제안이었다.

그러나 금융 위기만을 놓고 책을 쓰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내가 금융 자본주의의 폐해를 많이 얘기하기는 했지만 금융을 전공한 것도 아닐뿐더러, 내가 책을 쓴다 한들 이미 2009년, 2010년이 되면 금융 위기를 소재로 한 책이 수백 권은 나올 것 같았다. 고민을 하다가 아예 이런 금융 위기를 낳은 신자유주의를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게 필요할 듯했다.

프레시안 : 그래서 등장한 책이 <23가지>다. 책 제목을 둘러싼 사연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많다. ’23가지’ 자체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장하준 교수와 편집자 사이의 대화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들었다.

장하준 : 의미 없는 숫자다. (웃음) 일단 신자유주의 즉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책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구체적인 상이 잡히지 않았다. 그 때 미국 블룸즈버리 출판사의 편집자(피터 기네이)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이라는 제목을 제시했다. 이거다 싶었다.

처음에는 ’20가지’가 나왔는데 식상하고 밋밋했다. ’25가지’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제목을 놓고 계속 얘기를 하다가 식상하지 않고 눈에 띄는 숫자인 ’23가지’로 결정되었다. 많은 독자들이 결과적으로 제목의 ’23가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면 이런 의도가 성공한 듯하다.

프레시안 : 애초에 책에서 다뤄보려고 쭉 나열했던 주제들이 많을 텐데, 23가지를 선택하면서 누락한 게 있나? 마지막까지 망설인 항목이 있다면?

장하준 : 글쎄…. 넣을까 하다가 뺀 것은 없다. 개별 주제를 다루지 못한 것도 관련 주제가 있으면 내용으로라도 다 집어넣었다. 다만 다른 책에서 자세히 다뤘기 때문에 굳이 안 다룬 것도 있다. 가량 문화와 경제 발전의 관계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다뤘지만 다른 각도에서 한 번 더 다뤄볼까 했는데, 아주 핵심적인 얘기는 아니니까 최종적으로는 뺐다.

이런 얘기다. 서양 사람들은 “아시아적 가치는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말을 종종 하는데…. 자기네는 언제 민주주의를 했었나? 미국은 1960년대까지 흑인들이 투표를 할 수 없는 주가 많았다. 오늘날 선진국 중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스위스도 1971년이 되어서야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용했으니까. 결국 이런 내용은 책에서 빠졌다.

‘정치’와 분리된 ‘경제’는 없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23가지> 전체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얘기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장하준 :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것처럼, 23가지 다 하고 싶은 얘기였다. (웃음) 굳이 하나만 고르자면 맨 앞에 나오는 Thing 1(‘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이다. 많은 이들이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얘기를 하는데,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바로 시장이 정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정치 논리, 경제 논리를 분리해서 얘기하려는 사람들은 경제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막으려는 숨은 의도가 있는 사람이다. 정치가 곧 경제고, 경제가 곧 정치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아는 게 중요하다. <23가지> 전체를 꿰뚫는 핵심 주장을 한 번 더 강조하자. 정치와 분리된 ‘자유’ 시장은 없다!

프레시안 : 그런 주장은 일반적인 경제학의 상식과 어긋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장하준 교수가 경제에 도덕과 같은 가치를 들이민다고 비판한다.

장하준 : 그런 상식을 깨는 게 이 책의 일차적인 목적이다. 많은 주류 경제학자는 ‘경제학은 가치중립적인 학문’이라고 주장한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경제학의 뿌리가 바로 도덕철학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평생 두 권의 책을 썼는데, 그 중 하나가 <국부론>(1776년)이고 그보다 앞서 펴낸 책이 <도덕감정론>(1959년)이다.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만으로는 한 사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았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어떤가? 그 역시 경제를 분석할 때 행위자를 ‘개인’이 아닌 ‘집단’ 즉 계급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의 책을 읽어보면, ‘지주’ ‘자본가’ ‘노동자’ 등의 단어가 많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도 경제가 곧 정치의 산물이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이처럼 경제학은 처음부터 도덕, 정치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경제학의 초기 이름도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 아니었나? 이랬던 경제학에서 가치를 배제해야 한다면서 등장한 것이 오늘의 주류 경제학이다. 그러나 정작 가치 판단을 배제한다는 그 주류 경제학이야말로 특정한 가치로 무장했다.

‘개인은 사회와 관계가 없는 원자로 존재한다’, ‘개인은 이기심만으로 움직인다’ 등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전제가 되는 이런 주장이야말로 가치 판단 아닌가? 세상이 개인의 이기심만으로 움직인다면 왜 우리말에 ‘사랑’ ‘믿음’ ‘연대’와 같은 단어가 있겠나. ‘이기심’과 같은 단어로만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의도가 주류 경제학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자신의 가치를 감추면서 ‘주류 경제학은 가치중립적’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게 더 위험하다. 주류 경제학이 전제하고 있는 여러 가지 가치들을 은폐하니까. 나는 <23가지>를 통해서 바로 이런 주류 경제학이 은폐한 진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프레시안 : 주류 경제학과 다르게 장하준 교수가 옹호하는 경제학이 전제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장하준 :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일부 시장주의 비판자와는 다르게 ‘성장’이나 ‘물질적 부’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그런데 그 뿐만은 아니다.

가령 ‘사회 통합’도 경제학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다. 남아메리카 국가는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사이의 소득 불평등이 상상을 초월한다. 사회 통합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은 한 나라의 부가 늘어나는 데만 초점을 맞출 뿐, 이런 소득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 갈등 같은 것은 도외시한다.

또 ‘노동 시간’도 중요하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의 노동 시간은 세계 최장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일을 많이 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할 때다. 이렇게 경제학이 경제 현상을 설명하면서 고려해야 할 여러 가지 가치가 있다. 특별히 한 가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것을 다 염두에 두고 경제 현상을 설명하고 경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 개입=개발 독재? 아니다!

프레시안 : 이제 본격적으로 <23가지>를 비롯한 장하준 교수의 주장을 둘러싼 쟁점을 살펴보자. 장하준 교수는 경제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런 주장을 놓고 어떤 이들은 ‘과거 한국의 개발 독재는 불가피했다’ 이렇게 읽는 이들이 있다. 한국의 개발 독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장하준 : 한국의 개발 독재 과정을 보면, 정부가 강압적 수단을 써서 노동과 자본을 동시에 탄압하면서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 과정에서 비민주적인 일도 많이 했다. 특히 힘없는 농민, 노동자들이 겪었던 고생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컸다. 그런 점에서 개발 독재는 분명히 잘못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 제대로 평가를 해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첫째, 우선 한국 개발 독재의 특이한 점은 그 기간 동안에 자본가도 적지 않은 통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투자를 하는지조차 일일이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했으니까. 이것은 남아메리카 나라들과 같은 다른 개발도상국과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부분이다.

남아메리카 부자들은 외국에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있으며 외국에서 돈을 물 쓰듯 썼었다. 그런데 한국의 부자들은 외국 여행도 마음 놓고 못하지 않았나? 심지어 양담배를 피워도 잡아갔다. (물론 숨어서 호의호식하는 이들도 많았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부자, 자본가까지 다잡아서 모은 돈을 경제 발전에 집중 투입했으니까.

둘째, 이런 개발 독재를 통해서 이룬 경제 성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1980년대 말에 노동자의 힘이 사회 전체적으로 강화되는데, 그 조건 중 하나가 바로 경제 성장이었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일어나자 노동자의 지위가 올라간 것이다.

경제 성장을 해서 소득이 늘어나는 게 단순히 집에 TV, 세탁기 들여 놓는 것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덜 힘든 일을 하고, 노동 시간이 줄고, 더 따뜻한 집에서 잘 먹고, 병원을 더 자주 가는 등 삶의 질이 과거와 비교했을 때 획기적으로 향상된 것이다. 제일 좋은 예가 평균수명이다.

내가 1963년생인데,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한국의 평균수명이 53세였다. 2010년에 대지진이 있었던 아이티의 평균수명이 54세였다. 50년 전에 아이티보다 더 못했던 나라가 지금처럼 성장한 것을 가지고, ‘한국의 경제 성장 별 것 없었어!’ 이런 식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이런 개발 독재 과정에서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그래 ‘위대한 박정희의 독재가 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성공했어?’ 이건 아니다. 그 경험을 이런 영웅사관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런 발전을 위해서 ‘박정희’가 꼭 필요했었던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18년 동안 권력을 쥐어서 그런 경제 성장이 된 게 아니다. 그건 명백히 잘못된 일이었다.

다만 그 때 한국의 상황에서 자본과 노동을 동시에 통제하는 방식이 빠른 경제 성장의 조건이었다. 바로 이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경제적 독재/정치적 독재의 효과를 나눠서 살피면 유용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경제적 통제가 정치적 자유의 조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에 한국의 군부가 개발 독재를 하고 있을 때, 그와 유사한 산업 정책을 하는 나라들이 많았다.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프랑스, 핀란드 등. 이런 나라들이 독재 국가인가? 모두 발달한 민주주의 국가들인데도 한국의 개발 독재와 유사한 정부 개입을 하면서 경제 성장을 꾀했다. ‘정부 개입=개발 독재=反민주주의’ 이런 인식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

관치 금융이 왜 문제인가?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군부 독재의 경험 탓인지, 요즘에도 경제적 통제에 대해서 반감이 크다. 한국에서는 우파보다도 넓게 보면 좌파로 묶일 법한 이들이 중앙은행 독립, 관치 금융 청산, 주주 자본주의를 주장하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장하준 : 방금 얘기했듯이 군부 독재가 경제 성장을 추동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많았다. 그런 부작용을 염두에 두고, 정부 개입에 무조건 알레르기를 일으키다 보니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경제 정책을 놓고 오히려 좌파가 나서서 비판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제는 ‘정부 개입=개발 독재=反민주주의’ 이런 인식을 버릴 때가 되었다.

이제는 한국도 국민이 민주주의에 의해서 정부를 통제하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선출한 민주 정부가 경제를 통제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 소수의 경제 관료, 경제학자 등이 중앙은행을 좌지우지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에 맞는가? 아니면 국민이 선출한 정부가 통제하는 게 맞는가?

관치 금융 논란도 그렇다. 나는 자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니까. (웃음) 민주적으로 통제만 된다면 관치 금융이 맞다. 군부 독재 때야 민주적으로 통제를 받지 않는 몇몇 관리들이 제멋대로 은행을 좌지우지해서 문제였지만, 민주 정부가 은행을 통제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 그게 바로 민주주의 아닌가?

자꾸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이런 말을 되뇐다. “정치 논리를 배제하자!” 그 속내는 바로 이거다. “우리 마음대로 할 테니, 너희들은 입 닥치고 있어!” 사실상 그들이 국민의 간섭을 받지 않고 ‘시장 독재’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제 이런 진실을 명확히 봐야 할 때다.

주주 자본주의는 사회운동의 무덤

프레시안 :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터 <23가지>까지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매섭다. 한국에서는 시민단체가 소액 주주의 권리를 옹호하면서 주주 자본주의를 추동했다. 주주 자본주의를 이용해 오너-경영자의 전횡을 견제하자는 발상이다.

장하준 :재벌들이 지금 수세에 몰린 것은 자업자득의 측면이 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어떻게 국가의 굴레에서 벗어나 볼까 고민하다가 당시 전국경제인연합 회장이었던 고(故) SK(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이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논리를 들여와서 강연 등을 통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주주 자본주의다.

회사라는 게 주주의 것인데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이런 논리다. 그 때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너희 말 그대로 따라서 그 논리에 충실해 보자. 재벌 총수가 지배 주주냐? 겨우 5% 정도 가지고 황제 경영을 하는데 이게 맞느냐” 이렇게 반박하면서 소액 주주 운동을 전개했다. 처음에 호되게 당한 게 아이러니하게도 최종현 회장의 아들 최태원 씨다.

그렇다면, 이런 주주 자본주의의 발상은 맞는가? 기업이 법적으로는 주주의 것이라고 회사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사실은 주주만의 것이 아니라 노동자, 납품 업체, 지역 공동체 등 모두의 것이다. 바로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이익을 다 무시하고 주주만 보호하겠다는 발상을 사회운동이 옹호하는 게 맞는가?

주주는 주식을 쉽게 팔고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참을성이 없다. 노동자, 납품 업체, 지역 공동체 등과 같은 다른 이해 당사자(stakeholder)는 그에 비해 유동성이 낮다. 주주가 자신의 이익만 내세우면 노동자를 해고하고, 납품 단가를 후려치고, 지역 공동체에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게 낫다.

주주 자본주의 하에서는 주주와 재벌들이 짝짜꿍을 해서 노동자, 소비자 또 다른 이해 당사자를 착취한다. 재벌들과 주주들 간의 싸움은 누가 많이 먹느냐는 것인데, 그 둘 사이에 보통 노동자, 소비자 등을 벗겨 먹어야 한다는 합의가 있다. 지금 노동자, 소비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들이 몇몇 재벌을 망신 준 것으로 뿌듯해 하지만 결국은 자기 무덤을 파는 것이다.

삼성을 외국 자본에 넘길 것인가?

프레시안 : 몇몇 시민단체가 소액 주주의 권리를 내세우며 주주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나선 게 시민들의 호응을 받은 것은 한국 사회에서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의 전횡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재벌에 그나마 망신이라도 줄 수 있었던 게 바로 주주 자본주의 운동(?)이었다.

개발 독재 과정에서 등장한 재벌의 폐해를 어떻게 생각하나?

장하준 : 경제 성장을 대기업 중심으로 할 필요가 있었느냐 이런 비판이 많다. 또 그 근거로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 성장을 발전시켰다는 타이완이 거론된다. 그런데 사실 타이완도 대기업이 많았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국영 기업이다. 민간 기업만 통계에 넣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많은 것 같지만 공기업까지 포함하면 대만도 중소기업만 있는 나라는 아니다.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 성장에서 대기업이 갖는 장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지금의 재벌 체제가 장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점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그 단점을 어떻게 규제하느냐가 아닐까? 대기업 중심의 경제 체질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위권 재벌의 주력 기업이 흥하느냐 망하느냐에 따라서 국민 경제의 운명이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미국처럼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가 득세하는 나라에서도 (망하더라도 정부 개입은 없다고 하더니) 결국은 GM을 국유화해버리지 않았나? 그러니 우리도 이제는 재벌을 사회적으로 통제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프레시안 : 듣고 보면,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재벌을 주주뿐만 아니라 노동자, 납품 업체, 지역 공동체 등 많은 이해 당사자의 의사가 관철되는 일종의 ‘사회 기업’으로 재탄생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한국의 시장 권력을 상징하는 삼성을 어떻게 할까? 최근에는 불법적인 3세 세습이 문제가 되었다.

장하준 : (단호하게) 삼성은 일단 노동조합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런 기본적인 것부터 안 하면서 몇 천억 원 사회에 헌납한다고 자신에 대한 여론이 바뀌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 인정과 같은 가장 하기 쉬운 일을 해서, 일단 성의를 보이라는 것이다. 그것조차 안 하면서….

방금, 삼성과 같은 재벌을 사회적으로 통제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현실에서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이디어 차원에서 한 가지 제안을 했었다. 세습 물론 나쁘다. 그런데 그렇게 기어이 아들딸한테 물려주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주고 대신 받을 걸 받자, 이런 아이디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요구가 가능할 것이다. 경영권 세습을 용인할 테니 노동조합을 인정하라. 또 비리 사학 재단 임시이사를 정부가 임명하는 것처럼 이사회의 40% 정도를 정부,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에 할당해 사회의 감시를 받아라. 그리고 이런 체제 속에서 10년 후에 그 경영권 세습의 결과를 평가하자.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삼성이라는 기업을 어떻게 하면 사회가 통제하면서 장기적으로 국민 경제에 득이 되는 기업으로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삼성의 경영권 세습이 못마땅하다고 주주 자본주의 식으로 접근하면, 결국 삼성은 국제 금융 자본의 소유물이 된다. 그 금융 자본 뒤에 무슨 자본이 숨어 있을까?

지금이야 우리는 이 씨家, 정 씨家의 이름도 알고, 얼굴도 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압력을 넣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 펀드’ 뒤에 마약 밀매 조직이 숨어 있는지, 아프리카의 독재자가 숨어 있는지 알게 뭔가? 그러면 삼성을 통제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이게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인가?

수십 년간 온 국민이 나쁜 물건 써가며, 아버지 삼촌 형 오빠가 노동조합도 못 만들고 피땀 흘려서 일군 기업을 왜 외국 금융 자본한테 내주냐는 말이다. 사실 그 금융 자본도 거슬러 올라가면 삼성과 비교할 수 없이 온갖 악행을 저질렀는데…. 예를 들어, HSBC는 아편 무역으로 성장했다.

차라리 그렇게 삼성이 못 마땅하면 주주 자본주의 이런 얘기를 할 게 아니라 국유화를 주장하자. 그게 차라리 일관성이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아프리카에서 용 날 수 있다

프레시안 : <23가지>에서도 강조했듯이, 장하준 교수는 개발도상국의 성공적인 경제 성장 전략으로 ①정부가 주도해서 ②특정 산업을 잘 선택하고 ③금융을 적절히 통제하고 ④보호 무역을 통하는 방법을 권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WTO(세계무역기구)가 상징하듯이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쓰는 상황에서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저개발국에서 이런 방법이 가능할까?

다시 말하자면, 한국, 싱가포르, 타이완, 홍콩과 같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등에서 또 등장할 수 있을까?

장하준 : 1955년쯤에 누가 ‘한국이 앞으로 50년쯤 후에는 세계 전자 산업을 주도할 거야’ 이렇게 예측했다면 모두 다 웃었을 것이다. (웃음) 이처럼 장기적으로 어떤 나라가 세계 경제를 주도할지 전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사실 방금 지적한 게 다 맞다. WTO 체제에서 후진국이 산업 정책, 보호 무역을 하는 게 훨씬 어렵다.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구조 조정 프로그램을 통해서 각국의 경제 정책을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에 맞춰 뜯어고치기도 했고. 그래서 전 세계의 많은 개발도상국이 패배주의에 빠져 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고 개발도상국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경제 성장을 꾀하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상황이 좋았던 게 사실이지만 사실 한국은 미국, 세계은행 등의 말을 안 들었다. 1950년대 말 미국이 은행을 다 민영화하라고 했었는데, 박정희 정부는 반대로 국유화했다. 박정희 정부가 포항제철 짓는 걸 세계은행부터 나서서 말렸는데 결국 그것도 지었다. 그 때 그걸 주저했으면 지금의 철강 산업이 있었을까?

냉전, 보호 무역 등 경제 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했는데, 한국은 그걸 해낸 것이다. 내가 여러 개발도상국을 돌아다녀 보면, 항상 잘 안 되는 나라가 남의 탓을 많이 한다. (웃음) 세계 조건이 어렵긴 하지만, 머리를 짜내면 쓸 수 있는 정책이 아직도 많다.

제3세계 공무원들이 이런 농담을 한다. 일 하기 싫으면 WTO 핑계를 댄다고. 장관이 뭘 시키면 공무원이 이렇게 대답한다. “이건 WTO에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럼, 장관이 WTO 서류를 찾아보겠나. “안 되겠네” 하고 포기한다. 이렇게 많은 개발도상국이 할 수 있어도 안 하는 경우가 많다.

케인스주의는 과연 실패했는가?

프레시안 : <23가지>의 영국 언론 서평 중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전기(<존 메이너드 케인스>(고세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를 쓴 로버트 스키델스키 워릭 대학 명예교수의 <뉴스테이츠먼> 기고가 눈에 띄었다. 그 서평에서 스키델스키 교수는 국가가 주도해서 경제가 성장한 국민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묻고 있다.

장하준 : 스키델스키 교수는 그 서평에서 1960~70년대 케인스주의 경제 정책으로 성장에 성공한 유럽의 경제가 결국은 난관에 봉착하지 않았나,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가령 1979년 영국에서 대처 정부가 집권했을 때, 당시 실업자가 100만 명이 넘었다. 그걸 케인스주의 경제 정책의 실패라고 비판하며 보수당 대처 정부가 등장했다. 그런데 대처 정부 집권 3년 만에 실업자가 300만 명이 되었다. 진짜 실패한 경제 정책은 어느 쪽인가?

<23가지>에서 누누이 얘기했지만, 1960~70년대와 그 이후의 경제 성과-경제 성장, 금융 안정, 소득 분배 등-를 비교해보면 어느 것 하나 나아진 게 없다. 1970년대 들어서 케인스주의 경제 정책이 어느 정도 위기에 맞은 게 사실이지만, 그게 파산했다는 것은 1980년대의 대처, 레이건 정부와 같은 우파 정부의 부당한 공격일 뿐이다.

1960~70년대의 케인스주의 경제 정책이 과연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면, 어떤 점에서 그랬는지 설명해야 한다. 일단 그걸 공격하면서 들어선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성과만 놓고 보면 그런 비판은 부당해 보인다. 뭔가 나아진 게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 그 서평을 읽으면서 스키델스키 교수마저 그런 부당한 공격을 너무 쉽게 인정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만약 대처 정부가 집권을 하지 못해 케인스주의 경제 정책이 좀 더 유지가 되었더라면 30년이 지난 지금 유럽 경제의 성적표가 훨씬 더 나았을 수도 있다. 물론 케인스주의 경제 정책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또 그 나름대로 위기를 극복할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했을 테니까.

프레시안 :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의 한국 경제를 놓고도 비슷한 설명이 가능할까?

장하준 : 그렇다. 예전에는 1년에 6~7% 성장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4% 성장에도 굉장히 기뻐한다. 그러면서 경제가 성숙했으니 성장률이 떨어진 건 당연하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경제가 성숙해서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이라면, 서서히 떨어져야지 어떻게 그렇게 급격히 떨어지는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꾸 세계화 등의 개방 경제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화에 동참한 덕분에 우리가 예전보다 잘 살게 되었다.” 외환 위기 이후 개방해서 소득이 몇 만 달러로 늘었다고 하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는 비교다. 왜냐하면, 천천히 조심스럽게 개방을 했더라면 외환 위기도 없었을 테고 지금까지 훨씬 더 많이 또 빨리 성장을 했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미국, 유럽 등에서 이른바 자본주의 ‘황금시대’가 약 30년간 지속되었다.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등의 산업이 이 당시 자본주의의 성장 동력이었다. 그런데 그런 식의 산업이 성장 동력으로 앞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뿌리를 내리는 게 가능할까?

장하준 : 지금까지 자본주의를 지탱하던 그런 성장 동력 산업이 무한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큰 역할을 할 것이다.

1980년대 초에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그런 얘기가 나올 때,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후진국에서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산업의 제품을 수출하는 것은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고 전망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네 마리 용보다 몇 십 배 큰 중국이 지금 그런 걸 하고 있다.

더구나 그런 산업의 제품에 대한 잠재 시장은 여전히 넓다. 지금까지 전 세계의 약 10억 명 정도가 그런 산업의 혜택을 보았다. 그런 혜택을 보지 못한 수십억 명이 전 세계 곳곳에 여전히 남아있다. 특히 가난한 나라에서 앞으로도 그런 산업의 제품에 대한 수요가 엄청날 것이다.

또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변수는 과학기술이다. 1980년대까지 컴퓨터 산업을 주도하던 IBM의 사장이 1950년대 말에 이런 얘기를 했었다. “내가 예상할 때, 연간 컴퓨터 수요는 한 다섯 대 정도야!” 그 때만 하더라도 미국의 해군, 공군, 육군, 국방부가 사면 끝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컴퓨터 대수가 몇 대인가?

마이크로 칩이 발명되기 전까지 모래는 건축 외에는 중요한 자원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규소(실리콘)는 마이크로 칩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료다. 콜탄(Coltan)은 어떤가? 아프리카 중서부 콩고에서 생산하는 콜탄은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칩을 만드는 핵심 원료다. 예전에는 자원도 아닌 게 자원이 된 것이다.

이처럼 과학기술은 산업의 지평을 바꾼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자동차 등의 산업도 이제 포화 상태다’ 이런 생각을 하겠지만 앞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이 어떤 가능성을 열어줄지 아무도 모른다.

프레시안 :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지구의 한계라는 게 분명히 있지 않은가? 이런 지구의 한계를 염두에 둔다면 과연 경제 성장이 가능한지, 또 설사 가능하더라도 바람직한지 등의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장하준 교수는 성장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성장을 하지 않고도 공동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장하준 : 어느 정도 소득 수준이 된다면…. 그 경계선이 1인당 소득 1만 달러인지, 2만 달러인지 이런 걸 놓고 싸우기는 하지만, 사실 그 이상이 되면 소득 수준과 국민 행복이 상관관계가 없다. 그 수준부터는 그 사회의 구성원이 어떤 좋은 사회를 만드는가, 이런 게 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최소한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가 될 때까지의 경제 성장 없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다. 물론 경제 성장의 과실이 편중되게 배분되면 효과가 없지만, 기본적으로 소득이 늘어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이런 걸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인도의 케랄라 주가 있다.

케랄라 주는 성장 없이도 사람들이 잘 사는 곳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곳 인구의 15% 정도가 서남아시아의 두바이 같은 곳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송금한다. 바로 이 송금하는 돈으로 비교적 윤택한 삶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이처럼 어느 정도의 부는 기본 조건이다. 물론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는 그만큼 성장이 필요 없으니, 성장을 재고하는 게 맞지만….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지구의 한계를 염두에 뒀을 때 인류가 신경을 써야 할 부분 중 하나가 친환경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조악한 비교지만, 국민소득 1달러를 생산하는데 중국이 일본에 비해서 온실 기체를 10배 더 배출한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만약 일본이 중국에 기술을 다 이전해 주면 중국의 온실 기체 배출량을 90% 줄일 수 있다.

이렇게 과학기술을 통해서 가능한 한 지구에 주는 부하를 줄이려고 노력하면서, 성장을 재고하는 것처럼 인식을 바꾸고, 생활습관 같은 환경에 대한 태도도 바꾸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지구에 부하를 주는 인류가 다 자살하는 방법이지만, 그럴 수야 없지 않은가? (웃음)

프레시안 : 최근에 세계화의 폐해가 커지면서 지역에 기반을 둔 공동체 경제, 공동체 운동, 이런 실천이 제1세계, 제3세계를 막론하고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보는가?

장하준 :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실천을 하는 것은 좋다. 다만 나는 제3세계가 전공이라서 그런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어느 정도 자본, 기술이 뒷받침이 되기 때문에 지역에 맞는 뭔가를 할 수 있을 텐데, 가난한 지역은 열악한 생활수준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또 그런 지역은 경제도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구매력이 없으니까 기껏해야 선진국에 팔 수 있는 커피, 카카오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똑같이 커피를 팔아서 살아가는 지역 중에도 협동이 잘 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 사이에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도의 자본, 기술이 축적되지 않은 지역의 실험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프레시안(장하준)
프레시안 : <23가지>에서 많은 이들이 흥미롭게 읽은 부분 중 하나가 Thing 4(‘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이다.

사실 이 주장을 하면서 언급한 <오래된 것의 충격 : 1900년 이후의 기술과 세계 역사(The Shock of the Old : Technology and Global History Since 1900)>의 저자인 영국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에저턴 임피리얼 대학 교수는 11월 중순에 한국을 방문했었다. 그런데 정작 에저턴 교수의 주장은 <23가지> 덕분에 유명해졌다.

장하준 :(웃음) 에저턴 교수가 한국에 왔었나? 몰랐다.

프레시안 : <23가지>에서 언급한 책도 조만간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접한 독자들의 반응이 엇갈린다.

한 독자는 세탁기와 같은 가사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은 저임금의 질 낮은 노동을 전담하는 ‘세계화의 하인들’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장하준 교수가 가사 기술의 영향력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은 아닌지를 물었다. 사실 가사 기술의 발전은 여성에게 집안일도 하면서 바깥일도 하는 이중의 부담을 지운 게 아닌가?

장하준 :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지만 그것은 가부장제가 여전히 강고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가부장제가 여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세탁기와 같은 가사 기술의 발전이 삶에 준 충격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23가지>가 네덜란드에서도 번역돼 나온 터라, 그곳 케이블 방송의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상대방 토론자가 “<23가지>에 전반적으로 동감하는데 Thing 4에서 하는 주장에는 수긍할 수 없다” 이런 지적을 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혹시 당신이 겨울에 하천에서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니냐.” 그 말을 듣고서야 웃으면서 “그런 것 같다”라고 수긍을 하더라.

우리는 예전에 할머니, 어머니가 또 지금의 후진국 여성이 가사 노동에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 알지 못한다. 나도 통계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지금도 여성이 하루에 물 긷는 데만 두 시간을 허비한다. 부자 나라에서는 수도꼭지만 틀면 바로 물이 나오는데. 그런 가사 노동이 여성에게 얼마나 큰 족쇄인가?

물론 가사 기술로 그런 힘든 가사 노동에서 벗어났음에도, 가부장제가 지속되는 탓에 여전히 여성이 남성과 비교했을 때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가사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핀란드, 스웨덴과 같은 나라에서 국회의원, 정부 관리의 절반이 여성으로 채워지는 일이 가능했을까?

프레시안 : 또 다른 독자는 이런 지적도 했다. ‘세탁기가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을 촉진하고 가사 노동자 같은 직업을 거의 사라지게 만든 충격을 준 사실은 인정하지만, 지금의 인터넷도 세탁기 못지않게 사회에 큰 충격을 준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지적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하준 : 세탁기와 같은 가사 기술이 나온 게 한 100년쯤 되지 않았나? 그러면서 방금 언급한 그런 많은 변화를 야기했다. 인터넷이 1990년에 보편화되었다고 치고 한 2090년에 평가를 해보면 어떨까? 그 때는 인터넷이 100년간 가져온 변화가 세탁기가 100년간 이룩한 것보다 훨씬 클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한 20년간 이룩한 걸 본다면 세탁기가 100년간 가져온 변화와 비교할 게 못 된다. 물론 자신이 어떤 사회, 어떤 직업을 가지는지에 따라서 영향은 다를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인터넷의 덕을 훨씬 더 많이 보는 경우다. 언론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터넷이 언론에서 일하는 이들의 삶을 크게 바꿔놓았으니까.

다만 자기 사회, 자기 직업이 그렇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모든 사회, 모든 계층, 모든 사람도 그렇게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경제학자는 르네상스형 인간이 되어야

프레시안 : 이제 경제학 얘기를 해보자. 스스로 주류 경제학과는 선을 긋고 있다. 장하준 교수가 지향하는 경제학 또 경제학자는 어떤 모습인가?

장하준 : 생산, 유통, 소비와 같은 경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주류 경제학 교과서가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 제도, 심리학도 알아야 한다. 또 철학, 도덕도 공부를 해서 아까 얘기했듯이 어떤 가치를 지향할 것인지를 놓고 나름의 세계관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최대한 광범위한 공부를 했을 때, 비로소 경제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프레시안 : 장하준 교수가 비판하는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가 득세한 탓인지 몰라도, 한국의 대학은 그런 흐름과는 정반대로 가는 중이다. 예를 들자면, 서울의 한 대학은 2009년부터 회계학을 전공을 불문하고 전교생이 듣는 교양 필수 과목으로 선정했다. 또 여러 대학에서 역사, 철학 등의 과목이 축소·폐지되는 상황이다.

장하준 : 회계학을 교양 필수 과목으로? 그런 일이 있었나? 사실 회계학을 배우는 게 꼭 나쁘지는 않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도 (요즘에는 안 하지만) 예전에는 경제학과 학생은 모두 다 아주 기초 수준의 회계학을 배웠다. 사실 제일 좋은 건 회계학도 배우고 역사, 철학과 같은 여러 가지를 배우는 것인데….

생명과학자가 생명 현상을 연구할 때, 그것이 워낙에 복잡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접근이 필요하다. DNA 분석도 필요하고, 실험실에서 온갖 실험도 하고, 생물을 해부도 하고, 고릴라 침팬지 옆에서 몇 달을 앉아 있기도 한다. 또 동물 행태를 가지고 수학 모델을 만들어서 시뮬레이션도 하고. 이런 여러 가지 방법이 모아져야 생명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경제 현상이 워낙에 복잡하지 않나? 인간의 심리를 이해해야 갑자기 주식 시장이 거품이 확 일었다 꺼지는 것도 알 수 있고, 또 하드웨어를 이해해야 자동차 산업이 어떻게 발전할지 예측할 수 있고, 수요-공급의 원리도 알아야 하고, 어떤 경제 체제를 지향하느냐를 놓고 무엇이 정의인지 판단하는 기준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경제학은 종합 학문이 되어야 하고 또 경제학자는 그런 여러 분야의 공부를 통해서 경제 현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한 가지 특화된 분야를 깊이 파기는 해야겠지만…. 항상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프레시안(손문상)

좌로는 마르크스부터 우로는 하이에크까지

프레시안 : 언젠가 한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정성진 경상대학교 교수는 “장하준은 한국의 폴 크루그먼이다”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잘 알다시피, 크루그먼 프린스턴 대학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2008년)을 받은 대표적인 케인스주의자이다. 정 교수가 보기에,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이면서도 대중을 상대한 글쓰기에 능한 그가 장 교수와 겹쳤던 모양이다.

장하준 교수와 케인스주의자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장하준 : 사실 폴 크루그먼 교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웃음) 아무튼 비록 의견은 다르지만 존경하는 선배 경제학자인 정성진 교수가 그런 칭찬을 했다니 기쁘다. 나는 대중과의 소통에 신경을 쓰는 경제학자가 그렇지 않은 경제학자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그걸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니, 그런 칭찬은 고마운 일이다.

케인스가 나온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했지만, 나는 케인스주의자는 아니다. 케인스주의자의 거시 경제 분석에 동의하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케인스주의자들은 주로 단기적인 거시 경제 분석을 하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 기술 발전, 제도 발전 이런 변수에 대한 분석이 없다. 나는 반대로 그런 변수에 관심이 많다.

물론 케인스주의자들 자체가 단기적인 거시 경제 분석에 치중하는 사람들이지만…. 단기적인 거시 경제를 분석하는 틀은 케인스주의자의 것이 맞지만, 그것만으로는 경제 현상을 이해하는데 부족하다. 그들이 강조하지 않는 역사, 제도 등에 초점을 맞춰서 볼 때 경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프레시안 : <23가지>에서 주류 경제학자들이 떠받드는 경제학자가 아닌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리스트, 조지프 슘페터, 니컬러스 칼도, 앨버트 허시먼, 하이먼 민스키, 찰스 킨들버거 등과 같은 경제학자를 주목할 것을 권했다. 마침 최근에는 앨버트 허시먼의 책(<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이근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도 번역이 되었다.

방금 경제학자의 바람직한 상에 대해서 얘기를 했는데, 장하준 교수가 특별히 모델로 삼는 경제학자가 있는가?

장하준 : <23가지>에서도 얘기했듯이 나는 좌로는 마르크스부터 우로는 하이에크까지 그 사이의 많은 경제학자의 책을 읽고 배울 게 있으면 다 배우는 사람이다. 어떤 학파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고. 기본적으로 이 책에서 언급한 경제학자는 한 명, 한 명 다 배울 게 있는 이들이다.

다만 <23가지>에서 여러 차례 1978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을 언급했다. 그는 우리 시대 최후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정치학자로 출발했으나 행정학, 물리학,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등에 큰 공헌을 하고 마지막에는 인공지능 연구로 관심을 돌렸다.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스스로를 조직하는지에 정통한 단 한 사람을 들라면 그것은 단연 허버트 사이먼이다. 사이먼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경제학은 현대적 기업, 더 나아가 현대 경제에 관한 우리의 이해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런 훌륭한 업적에 비하면 한국에 소개가 안 된 것 같아서 이 기회에 특별히 그를 언급한다.

“질문을 던지고 논쟁을 제기한 경제학자”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이다. 장하준 교수는 100년 후에 어떤 경제학자로 기억되고 싶은가?

장하준 : 글쎄….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던 경제학자. 그의 얘기가 꼭 맞지는 않았지만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경제학자. 그런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프레시안(손문상)

그리고 남은 얘기들

약 2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나고 <23가지>의 내용과 장하준 교수 개인에 대해서 몇 가지 추가 질문을 던졌다. 추가 질문의 일부는 <프레시안>이 이 책을 읽은 독자 스물세 명에게서 미리 받은 질문이다. 장 교수는 질문이 선정된 독자에게 본인의 서명이 든 자신의 책과 추천 책 한 권을 선물로 보냈다.

프레시안 : 소득이 결정되는 변수를 한 국가의 생산성, 국가의 이민 제한 정책 등으로 보았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변수는 노동자의 힘 아닌가?

장하준 : 노동자와 자본가의 권력 관계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 변수는 <23가지>에서 지적한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한 국가의 생산성, 국가의 이민 정책은 소득의 큰 범위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렇게 큰 범위가 결정되고 나면, 그 안에서 노동자가 어떤 삶의 조건을 누릴지는 그들의 힘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아이티 노동자의 힘이 아무리 세다고 해서 미국, 스웨덴 수준으로 임금을 받을 수는 없다. 반면에 미국, 스웨덴은 같은 선진국이지만 미국 노동자와 스웨덴 노동자가 누리는 삶이 얼마나 다른가? 나는 <23가지>에서 선진국(미국, 스웨덴)과 후진국(아이티)의 소득 수준 차이가 기술적, 제도적 조건에 따른 생산성, 이민 제한 정책에 따라서 규정을 받는다는 걸 설명하고 싶었다.

프레시안 : <23가지>에서 신뢰에 기반을 둔 생산 방식의 한 형태로 ‘도요타 방식’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도요타 자동차의 리콜 사태나, <토요타의 어둠>(창해 펴냄)과 같은 일본 저널리스트의 책을 보면 과연 도요타 방식이 최선인지 회의가 든다.

장하준 : 사실 도요타 자동차의 리콜 사태는 과장된 것이다. 미국 측에서도 이제는 ‘그런 결정적인 결함은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꼬리를 내리는 상황이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몰락하면서 일부에서 도요타 자동차의 결함을 과장하고, 그것이 리콜 사태로 이어진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물론 도요타가 천사 기업은 아니다. 원래 도요타의 구호가 이것 아닌가. ‘마른 수건도 다시 짜라.’ 도요타 공장을 둘러보고 온 현대자동차 관계자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 “도요타 공장에 가봤더니 노동자가 뛰어다니면서 일하더라.” 도요타 공장의 노동 강도가 얼마나 센지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23가지>에서 강조했듯이 노동자에게 책임을 부여하고 각 개인을 도덕적 주체로 신뢰함으로써 결정권, 주도권을 준다는 점에서는 도요타 방식이 과거의 전형적인 대량 생산 방식과는 달라서 의미가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런 대안 생산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도요타 방식을 예로 든 것뿐이다.

프레시안 : 사실 1990년대 이후에 도요타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알려진 몇 가지 사례가 있지 않나? 자동차 공장의 경우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스웨덴의 우데발라 공장과 같은 예가 있다.

장하준 : 우데발라 공장 사례 말고도 실험적인 생산 방식을 자랑하는 곳이 많다. 그런데 그런 예를 부각하면 당장 이런 반응이 나온다. “그거야 저쪽 한 구석에서 특이하게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도요타 방식이 최고라서가 아니라 노동자를 부품으로만 여기지 않고서도 도요타처럼 세계적인 대기업이 되는 곳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프레시안 : 유독 신화가 많다. “학창 시절 천재 소년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 시간에 250쪽을 독파할 수 있는 독해력을 갖췄다” “중학교 2학년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영어 원서로 11독하고 번역판으로 12독을 했다.” “박사 학위를 받기 전인 1990년 27세 나이로 한국인 최초로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되었다” 등….

장하준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얘기는 역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동생(장하석)의 얘기인데 누군가 잘못 옮겨서 계속 내 얘기처럼 알려져 있는데…. 무협지 같은 얘기는 믿을 필요가 없다. 사실 나는 ‘천재과’라기보다는 ‘노력파’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고 공부하는 건 좋아해서 교수까지 되었지만.

프레시안 : 옆에 두는 책 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는가?

장하준 : 한 포털사이트에서 내 서재를 소개하고 싶다고 해서 5권을 꼽아서 소개했다. 일단 목록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새 the Galaxy)>(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권진아 옮김, 책세상 펴냄, 원서 : 1979년).

<상상의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Imagined Communities)>(윤형숙 옮김, 나남 펴냄, 원서 : 1983년)

<광기, 패닉, 붕괴 : 금융 위기의 역사(Manias, Panics and Crashes : A History of Financial Crisis)>(찰스 킨들버거·로버트 알리버 지음, 김홍식 옮김, 굿모닝북스 펴냄, 원서 : 1978년)

<장자>(장자 지음, 오강남 엮고 옮김, 현암사 펴냄)

<백년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민음사 펴냄) / <백년 동안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문학사상사 펴냄)

목록을 봐도 알겠지만, 나는 직업 자체가 책을 읽는 것이다 보니 일을 안 할 때는 흥미 위주의 책을 즐긴다. 보통 때는 추리소설, 과학소설(SF) 등을 즐기지 심각한 책은 읽지 않는다. (추천한 5권 중에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세계적으로 열광적인 팬을 거느린 유명한 SF 소설이다. <편집자>)

프레시안 : 추리소설, SF 작가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장하준 : 추리소설은 당연히 애거서 크리스티가 여왕이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로 잘 알려진 존 르 카레의 작품도 즐겨 읽는다. 그밖에도 요즘 유럽은 스웨덴, 노르웨이, 프랑스 할 것 없이 추리소설 르네상스다. 새로운 작품들이 나올 때마다 챙겨서 읽는 편이다.

SF는 사실 고전적인 의미의 작품보다는 최근 작가의 작품을 즐겨 읽는다. 닐 게이먼, 닐 스티븐슨과 같은 작가의 SF 또 (어린이들이 읽는 책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황금 나침반>의 필립 풀먼, <견인 도시 연대기 : 모털 엔진> 등을 쓴 필립 리브 의 소설도 즐기는 편이다. 러시아 작가 빅토르 플레빈(Victor Pelevin)의 작품도 즐겨서 읽는다.

(닐 게이먼, 닐 스티븐슨, 필립 풀먼, 필립 리브의 책은 국내에 몇 권이 소개가 되었다. 빅토르 플레빈의 작품은 1998년 <벌레처럼(The Life of Insects)>(책세상 펴냄), 2006년 <공포의 헬멧(The Helmet of Horror)>(문학동네 펴냄)이 국내에서 나왔다. 장하준 교수와 책 읽는 재미를 공유하고 싶은 이들은 지금 당장 검색창에 작가 이름을 쳐볼 것! <편집자>)

프레시안 : 혹시 다음 책을 계획 중인가?

장하준 : 그렇게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웃음) <23가지>가 앞으로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출판될 예정이라서 당분간은 그에 대응하느라 바쁠 듯하다. 당장 1월 초에 미국에서 책이 나오는데, 그 쪽 언론의 반응에도 대응을 해야 할 것 같고. 3월에는 미국 방문도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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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인터뷰·상] “주가 2000? 갈 곳 없는 ‘투기 자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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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042011
 

“국회가 한미 FTA를 비준하지 않으면, 수십 년 후에 한국은 쿠바, 북한처럼 세계 경제에서 고립된다.” / “무상 급식을 하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 / “젊은이들은 눈높이를 낮춰서 중소기업이라도 취직하라.” / “감세, 부자만을 위한 것 아니다.”

지난 1년간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정치인, 관료들이 한국 경제를 놓고 곳곳에서 얘기했던 말이다. 최근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김희정·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 <23가지>)을 펴내며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경제학자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의 생각은 어떨까?

연말에 한국에 잠시 들른 장하준 교수는 이미 지난 27일 한나라당 일부 의원이 주최한 국회 강연(‘새로운 자본주의와 한국 경제의 미래’)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부자 감세, 무상 급식, 복지 국가 등의 현안을 놓고 한나라당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장 교수는 이명박 정부, 한나라당의 접근을 강하게 질타했다.

장하준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현안을 놓고 좀 더 자세하게 자신의 입장을 털어놓았다. 장 교수는 “30년 뒤에도 여러 산업에서 삼성, 현대자동차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을 가지기를 원한다면 지금 한미 FTA를 추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며 “한미 FTA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하준 교수는 비정규직 문제,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상징되는 교육 문제, ‘청년 실업’ ’88만 원 세대’로 상징되는 세대 격차 문제 등 오늘날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복지 국가’를 제안했다. 그는 “‘보편 복지’를 지향하는 유럽 국가처럼 복지 제도가 갖춰진다면 한국 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더 효율성과 역동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하준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12월 26일 저녁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호텔에서 약 두 시간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장 교수와의 인터뷰를 한국 사회의 현안과 책을 둘러싼 쟁점으로 나눠서 두 차례 싣는다. 이 인터뷰에는 <프레시안>이 <23가지>를 읽은 독자로부터 받은 스물세 가지 질문이 포함돼 있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1970년대에 한미 FTA 했으면 삼성, 현대車 없었다”

프레시안 : <23가지>가 인기를 얻는 와중에 한미 FTA 추가 협상이 타결되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2011년 2월 임시국회에서 국회 비준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일관되게 한미 FTA 반대 입장을 밝혔는데….

장하준 : 그렇다.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따라서, 심지어 더 안 좋은 방향으로 한미 FTA를 추진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 한나라당 또 일부 언론은 한미 FTA를 거의 맹목적으로 추진한다. 조금만 따져 봐도 그것이 약보다는 독이 될 게 뻔히 보이는데도 그렇다.

프레시안 : 한미 FTA, 무엇이 문제인가?

장하준 : 첫째, 한미 FTA, 한-유럽연합(EU) FTA, 한-칠레 FTA와 같은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은 진정한 자유무역이 아니다. 우리가 미국과 FTA를 맺어서 미국산 쇠고기, 자동차를 싸게 수입하면 그 과정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쇠고기, 일본 자동차를 차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수한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학자들, 예를 들자면 컬럼비아 대학의 인도계 경제학자인 자그디시 바그와티 교수 같은 경우는 내놓고 한미 FTA와 같은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을 진정한 자유무역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사실 다국 간 자유무역을 위해서 이미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것을 만들어 놓았는데 왜 또 양국 간 FTA인가?

한국 입장에서 한미 FTA를 반대해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미국이 됐건 EU가 됐건 선진국과 FTA를 하면 단기적으로는 시장 확대, 교역 확대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물론 이것마저도 불확실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후진국이 100% 손해다. 한국과 같은 뒤떨어진 나라가 차세대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간단히 생각해 보자. 1960~70년대에 한국이 미국과 FTA를 했으면 삼성전자, 포항제철, 현대자동차가 있었을까? 아직도 가발, 합판 등을 만들어서 수출하고 있었을 게 뻔하다. 예전에 자국 산업을 보호한 이유가 뭔가. 선진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우리 기업이 성장도 하기 전에 고사될까 봐서 그런 것 아니었나.

프레시안 : 한미 FTA를 찬성하는 이들은 1970년대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산업이 훨씬 더 경쟁력이 있다고 믿는다.

장하준 : 착각이다. 선진국과의 격차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미국, 독일, 스웨덴 등과 같은 최고 선진국과 비교하면 국민소득이 반도 안 된다. 가전, 반도체, 조선 등 일부 산업을 제외한 전체 산업의 생산성도 선진국의 50% 정도로 낮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 EU 경제와 통합하면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프레시안 : 삼성, 현대자동차 이런 기업은 FTA를 찬성한다.

장하준 : 그 기업은 반도체, 자동차 등과 같은 분야에서 미국, EU 기업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분야는 대개 1970~80년대에 기반을 다져놓은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새롭게 등장할 산업이다. 앞으로 20~30년 뒤에 등장해야 할 새로운 산업이 한미 FTA로 싹도 트지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한국은 미국, EU, 일본 등과 비교했을 때 제약 산업, 첨단 기계, 정밀 부품 등과 같은 산업에서 여전히 경쟁이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제 미국과 FTA를 하면 이렇게 차세대를 짊어지고 나가야 할 산업은 아예 나오지를 못한다. 이미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삼성, 현대자동차는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이런 차세대 산업은 대변인도 없는 상황이고.

“한국 이제 겨우 10등, FTA 하면 더 떨어질 가능성 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선진국과 FTA를 하면 자극을 받아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장하준 : 희망일 뿐이다. 경쟁을 한다고 능력이 저절로 키워지는 게 아니다. 내가 자주 드는 예인데, 가령 5등을 하는 친구를 1등들만 있는 반에 넣으면 자극을 받아서 1등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10등, 15등 하는 친구를 이 반에 넣으면 자극은커녕 스트레스만 받다가 성적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한국은 5등인가, 10등인가? 내가 보기엔 5등은 절대로 아니다.

프레시안 : 몇 등인가?

장하준 : 한 10등 정도? 한국의 소득이 한 2만 달러 정도 하는데 그 정도면 유럽에서 제일 가난한 포르투갈 내지는 과거 동구권에서 제일 잘 살았다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소속의 슬로베니아 정도다. 지금 최고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와 비교하면 50%, 60% 정도밖에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추진하는 FTA는 한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더구나 한미 FTA는 ‘투자자-국가 소송제’와 같은 독소 조항이 다른 FTA보다 더 많아서 그 중에서도 또 문제다. 이렇게 여러 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점보다 부정적인 점이 많은 FTA를 노무현 정부에 이어서 이명박 정부가 왜 저리 안간힘을 쓰면서 추진하는지…. 정말로 걱정이다.

프레시안 : 정작 시민들에게 FTA 찬성, 반대를 물으면 반반이다. 여전히 많은 시민이 FTA가 대통령의 말처럼 국운융성의 길이라고 믿는다.

장하준 : 정부가 나서서 하도 장밋빛 선전을 하니까. 이런 광고를 봤다 “한미 FTA를 하면 우리나라 성장 6% 증대 효과가 있다.” 사실 10년에 걸쳐서 6%가 성장한다는 얘기니까, 연평균 약 0.6% 정도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설명을 안 해 주니까, 시민들은 ‘우리나라 성장률이 3%인데, FTA를 하면 9%가 되는 거야?’ 이렇게 착각한다.

더구나 이런 연평균 0.6% 추가 성장도 못 믿을 예측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처음에는 연평균 0.2%로 예측했는데, 이 정도 효과를 내세우기는 민망하니까 ‘경쟁 때문에 생산성이 상승해 1년에 소득이 연평균 1% 늘어난다’는 검증도 안 된 가정을 집어넣어서 ‘연평균 0.6%, 10년간 6% 성장’ 결론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엉터리 예측에 의존해 추진되는 게 FTA다.

‘한미 FTA를 안 하면 우리가 나중에 북한, 쿠바처럼 세계 경제에서 고립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데…. 이런 식의 FTA는 시민이 정말로 막아야 한다.

“주식, 펀드? 혼자서 열심히 해봤자…”

프레시안 : 이렇게 시민들이 정부의 FTA 장밋빛 선전에 현혹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외환 위기 이후 10년간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탓도 크다. 2000년대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부동산, 주식, 펀드 투자 열풍은 그 직접적인 증거고. 혹시 장하준 교수는 부동산, 주식, 채권, 외환 등의 투자를 한 적이 있는가?

장하준 :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 할 생각도 없다. 이런 얘기가 있다. 경제학자들이 주식 시장에 나타나면 바로 팔 때라고. (웃음) 경제학 역사 300년을 돌이켜 봤을 때, 주식 시장에 나와서 돈 번 경제학자가 딱 두 명 뿐이다. 한 명이 데이비드 리카도, 다른 한 명이 존 메이너드 케인스. 나한테는 그렇게 투자를 해서 돈 벌 재주가 없다.

개인들이 이렇게 각종 투자에 나서게 된 것도 <23가지>에서 비판한 자유시장 이데올로기 탓이다. 한국 사회에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가 확산되면서 모든 게 다 개인의 탓이다 이런 분위기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야 해’, 이런 생각에 모두가 사로잡힌 것이다.

오죽하면 한때 인사말이 이런 거였다. “부자 되세요!” 전 세계 어디에도 이런 인사말은 없는데…. 그러나 아무리 개인이 열심히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의 시민도 그런 현실을 점점 깨닫는 중이다. <23가지>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그런 사정 때문이 아니겠나?

“‘돈’은 위에서 아래로 ‘똑똑’ 떨어지지 않는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한국 사회가 드디어 ‘내(개인)’가 아닌 ‘우리(공동체)’가 함께 살 수 있는 대안을 갈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장하준 교수는 이미 2005년 정승일 박사와 함께 펴낸 <쾌도난마 한국 경제>(부키 펴냄)부터 최근의 <23가지>까지 한국 사회의 대안으로서 스웨덴, 핀란드 등과 같은 복지 국가를 제안했다. 왜 복지 국가인가?

장하준 : 그렇다. 최근의 무상 급식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도 느낀 것인데, 한국 사람들은 복지가 돈이 남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 하나씩 살펴보자.

좋은 사회가 뭔가?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사회인가? 아니다. 어떤 사회에서 한 명이 모든 걸 가지고 나머지가 거지처럼 살아도, 그 한 명이 엄청난 부를 소유한다면 1인당 국민소득을 기준으로는 부자 나라일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그런 사회에서 사는 걸 바라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부를 나눠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복지 국가가 필요하다. <23가지>에서도 설명했듯이(‘Thing 13 :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자유 시장 지상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은 부자들이 돈을 벌게 놔두면 꼭대기에서 늘어난 부가 결국에는 아래로 ‘똑똑 떨어져(trickle down)’ 가난한 사람도 혜택을 입는다고 믿는다.

이런 논리다. ‘부자들한테 돈을 모아주면 처음에는 사회가 더 불평등해지고 밑에 있는 사람들이 고생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부자들이 투자도 하고, 일자리도 만들어 경제가 성장하면 (설사 소득 분배는 악화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사회 전체로 부가 퍼진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가장 좋은 예가 미국이다. 1979년 소득 상위 1%가 미국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한 10% 정도 되었다. 2006년 중반이 되면 그게 22.9%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렇게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줬음에도, 미국 경제의 투자율은 1960~70년대와 비교해서 더 떨어지고, 성장도 둔화가 되었다.

프레시안 : 복지 국가에서는 부가 어떻게 분배되는가?

장하준 : 한 사회에서 부가 골고루 퍼지게 하려면 위에서 아래로 똑똑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상당한 양의 부가 밑으로 내려오게 하는 펌프가 필요하다. 그 펌프가 바로 복지 국가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둬서 가난한 사람에게 소득을 이전하는 강력한 펌프, 즉 복지 국가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복지 국가 펌프의 제일 좋은 예가 스웨덴이다. 세금을 징수해 복지 제도를 통해서 소득 이전을 하기 전의 스웨덴은 소득 분배가 미국만큼 불평등하다. 그러나 복지 국가를 통해서 소득을 재분배한 스웨덴은 잘 알려져 있듯이 세계에서 제일 평등한 나라다. 이처럼 복지 국가야말로 부를 사회 전체로 확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복지 국가, 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높인다”

프레시안 : <23가지>를 보면 복지 국가의 경제 성장 효과를 설명하는 데도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장하준 : 그렇다. 복지 국가에서 안정된 생활을 누리는 시민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에 오히려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것은 미국보다 복지 국가인 유럽에서 보호 무역에 대한 요구가 덜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유럽 사람들은 자기가 종사하는 산업이 외국과의 경쟁으로 인해 문을 닫는다 해도 실업 수당을 받아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또 유럽 사람들은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데 필요한 직업 재교육도 받을 수 있다.

이에 반해 미국 사람들은 한 번 일자리를 잃으면 생활이 심하게 어려워질 뿐 아니라 다시 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적절한 재교육을 받으면 생명공학과 같은 ‘유망 산업’에서 일할 수 있는 미국 노동자들이 자동차 산업 같은 ‘사양 산업’에서 악착같이 일자리를 고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되면 대성할지 모를 유망한 청년들이 의사, 변호사와 같은 안정된 직종을 선호하는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복지 제도가 잘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개인의 선택은 사회 전체로 볼 때는 재능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떨어뜨린다.

만약 유럽 국가처럼 한국이 복지 제도가 잘 갖춰졌다면 이들이 첫 번째 직업을 선택할 때나, 혹은 현재의 직업을 떠나야 할 때 제2의 혹은 제3의 기회가 생기리라는 것을 알고 좀 더 개방적인 자세로 변화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런 자세는 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높인다.

프레시안 : 그런 맥락에서 <23가지>에서는 복지 국가를 두고 ‘노동자의 파산법’이라고 표현했다.

장하준 : 그렇다. 제2의 기회를 보장해 주지 않으면 기업가들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파산법을 도입했다. 설사 기업이 파산을 하더라도 법원이 기업가를 채권자로부터 보호해 재기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제2의 기회를 주는 복지 국가는 노동자를 위한 파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 더 강조하자면, 파산법이 기업가들로 하여금 위험을 더 적극적으로 감수하게 해 주는 것처럼 복지 정책은 노동자들이 변화에 더 개방적이도록, 그에 따른 위험을 더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를 갖도록 해준다. 이런 식이라면 도리어 복지 국가야말로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손문상)

“무상 급식, 가난한 애들한테 평생 갈 상처 안 주는 방법”

프레시안 : 오세훈 서울시장 등을 필두로 무상 급식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장하준 : 나는 무상 급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낙인 효과’가 있다. 가난한 아이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그 아이가 입을 상처가 얼마나 클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평생 갈 상처를 아이한테 주는 게 그 아이 또 이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도움이 될까? 강에다 카페 짓는다며 몇 백억 원씩 쓰는 나라에서 무상 급식 1년 하는 데 얼마나 든다고….

프레시안 : 오세훈 시장을 비롯해서 많은 이들은 이렇게 따진다. “중산층 이상의 돈을 내고도 급식을 먹을 수 있는 집의 아이한테 왜 세금을 낭비하나?”

장하준 : 참 답답한 일이다. 돈 없는 애들한테 평생 갈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돈 있는 애들도 그냥 무상 급식을 먹어야 한다는 얘기를 왜 못 알아듣나. 왜 돈은 돈대로 내고 상처는 상처대로 주는 일을 계속 고집하는가? 그렇게 돈 있는 애들이 먹는 밥값에 들어갈 세금이 아까우면 그 (돈 있는 애들의) 부모가 세금을 더 내면 되는 것 아닌가?

아까도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복지’ 하면 미국의 선별 복지만 떠올린다.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하듯이, 정말 굶어죽을 것 같은 몇 사람에게 몇 푼 쥐어주는 식으로. 무상 급식에 반대하는 이들한테도 바로 복지에 대한 이런 천박한 인식이 깔려있는 듯하다.

“하향평준화 아닌 상향평준화가 맞다”

프레시안 : 복지 국가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반대하는 이들 중 몇몇은 이런 주장을 편다. 한국 사회는 복지 국가보다 ‘투명 사회’로의 전환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축적된 기득권층의 온갖 특권 구조를 철폐하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인데….

장하준 : 복지 국가와 투명 사회, 이 둘의 선후를 따지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만든 다음에 복지 국가를 하자는 얘기인데…. 예를 들자면, 이들은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에 비해서 여러 가지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그 대안으로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상향평준화를 할 생각을 해야지 왜 하향평준화를 하려고 하는가? 정규직 노동자의 특권이 문제가 되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그만큼의 특권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더 맞는 방향 아닌가? 좀 있다 다시 얘기하겠지만, 나는 바로 복지 국가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더구나 <23가지>에서도 언급했지만(‘Thing 20 :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다가 아니다. 두 선수가 같은 출발선에서 달리기를 시작한다고 해서 공정한 것이 아니다. 한 선수는 배가 고파서 몸을 가눌 수도 없는 상태라면 어떤가? 그게 과연 공평한가?

‘같은 출발선’이라는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의미를 가지려면, 두 선수가 모두 다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불리 먹어야 할 것이다. 물론 두 선수 중 한 사람이 더 근력이 좋겠지만…. 바로 이런 최소한의 조건을 갖출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복지 국가라고 생각한다.

“세금은 늘이고, 복지는 확대하자”

프레시안 : 복지 국가로의 전환을 얘기하면 항상 재원 문제가 걸린다.

장하준 : 결국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다 같이 부담해서 마련할 수밖에 없다. 물론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은 더 내야 하고, 덜 버는 사람은 덜 내야겠지만….

사실 한국은 세금이 높다, 높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조세 부담률이 거의 최저 수준이다. 한국의 조세 부담률이 22~23% 정도인데, 우리보다 훨씬 가난한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나라들도 30% 정도는 된다. 소득 수준을 생각할 때 세금이 굉장히 낮은 것이다.

또 한국 같은 경우는 복지 지출이 GDP 대비해서 6~7% 되는데, 유럽은 복지 지출이 많은 나라는 GDP의 25% 수준에 이른다. 그 정도까지는 안 되더라도 최소한 지금의 두 배 정도는 복지 지출이 늘어야 복지 국가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즉, 조세 부담을 높이고 그 재원으로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한다.

이게 가능할까 생각하지만…. 스웨덴은 지금 세계에서 소득세율이 가능 높은 나라지만, 처음 소득세가 도입된 게 1932년이다. 세금을 그렇게 싫어하는 미국도 1913년에 소득세를 도입했는데, 스웨덴은 우파가 반대해서 1932년에 사회당이 집권할 때까지 도입하지 못했다. 그런데 일단 도입하고 나니, 세율이 20~30년 만에 상당히 높아졌다.

프랑스의 경우는 미테랑 대통령이 1981년 집권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우파의 목소리가 커서 복지 예산이 유럽 평균 이하였는데, 미테랑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 사회당 정부가 물러날 때 보니까 상위권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사람들이 한 번 그 정당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금방 바뀔 수 있다.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을 품어야 산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복지 국가로 성공적으로 이행한 유럽 여러 나라를 보면 공통적으로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 노동의 힘이 셌다.

장하준 : 복지 국가로 성공적으로 이행하려면 각종 복지 제도의 혜택을 보는 사람들, 이른바 복지 세력이라고 부를 만한 이들의 힘이 세져야 한다. 이렇게 복지 제도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아질 때 복지 국가가 될 수 있다. 물론 미국에서는 워런 버핏처럼 부자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자들도 있지만….

프레시안 :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비관적이다. 한국에서는 구체적인 노동자의 삶도 열악할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의 힘도 약하다.

장하준 : 한국의 기업이 외국으로 진출하면서 상대적으로 국내 노동자의 교섭력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의 교섭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연대다. 한국의 상황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외면하는 모습이다. 서로 적대시하고….

프랑스도 노동조합 조직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크고, 결정적으로 파업과 같은 행동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크다. 그것은 프랑스 노동조합이 자기 이익도 챙기지만, 실업자라든가 조직화되지 않는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은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공익을 위한 것으로 여긴다.

프레시안 : 방금 정규직 노동자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일도 시급하다.

장하준 : 그렇다. 기본적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이 OECD 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제일 높은 수치스러운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현실은 크게 잘못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럽의 경험을 염두에 두고 다른 접근도 필요하다.

유럽도 사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옛날보다 많이 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한국처럼 비정규직 문제가 큰 사회문제가 안 된다. 왜냐하면 복지 제도로 삶의 상당 부분이 뒷받침되어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일자리를 잃는다고 기본적인 생존권 자체가 위협을 받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은 복지 제도가 워낙에 미비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있는 복지 제도도 기업 복지 중심으로 짜여 있다. 즉 정규직 노동자는 복지 혜택을 입는 반면에, 비정규직 노동자는 기업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자리를 잃게 되면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막막한 신세로 전락한다.

이러다 보니, 정규직 노동자는 그들대로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밀어내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그들대로 열악한 일자리에도 목을 매고, 그 일자리를 잃으면 생계가 어렵고 병원도 못가는 생존을 위협받는 신세가 된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갈등도 더 심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복지 국가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연대를 위한 조건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공고 출신의 1억~2억 원 연봉 노동자 나와야”

프레시안 : 다른 주제로 넘어가자. 혹시 장하준 교수도 ‘소녀시대’, ‘카라’ 등과 같은 이른바 걸그룹을 좋아하나?

장하준 : 하도 여기 저기 많이 나오니까 이름은 알고 있지만…. 그런 걸그룹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다.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한다’, 이게 내 지론이기 때문에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좋다 싫다 대답할 처지가 못 된다. 이참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들어봐야 하나? (웃음)

프레시안 : 음악 듣기를 즐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제일 좋아하는 가수는 누구인가?

장하준 : 사실 나는 구닥다리라 요즘 유행하는 가수의 노래는 거의 안 듣는다. 옛날에 고등학교 때는 헤비메탈과 같은 록 음악을 많이 들었다. 예를 들자면, ‘딥 퍼플’, ‘레드 제플린’ 등과 같은…. 그나마 요즘까지 제일 많이 듣는 게 프레디 머큐리가 이끈 영국의 록 그룹 ‘퀸’이다.

한국 가수 중에는 김현식을 제일 좋아했는데 1990년 서른두 살에 요절해서 안타깝다. 그 때 좋은 가수가 많았는데 신촌블루스, 봄여름가을겨울 등….

프레시안 : 걸그룹 얘기를 물어본 것은 한국의 10대들이 현재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아이돌 스타와 같은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에서 소원을 이루는 이들은 극소수다. 이렇게 10대들이 연예인을 꿈꾸는 것 자체가 사실은 그들이 꿈을 잃어버린 세대라는 역설적인 증거라고도 볼 수 있다. 기성세대로서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프레시안(손문상)
장하준 : 꿈을 잃어버린 세대…. 전 세계 10대를 대상으로 학업 성취도 평가를 하면 항상 핀란드가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와 수위를 다툰다. 그런데 한 기사를 보니까, 핀란드 10대의 평균 학습 시간이 한국의 반이더라. 핀란드를 염두에 두면 한국은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하는 시간은 두 배인데 나오는 결과는 비슷하니까.

교육은 크게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특정한 지식 전수’와 ‘일반적인 교양.’ 한국은 이중 후자의 기능을 쌓는데 너무 많은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 그 와중에 10대는 힘든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고. 이런 10대들이 잠시 자신을 위로하는 TV 속 스타를 선망하는 것 외에 다른 꿈을 갖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보인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까? 개인적으로는 극복이 불가능하다. 남들이 다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고 있는데, 나 혼자서 다른 것을 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결국에는 사회가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절대로 하루아침에 해법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 오래된 문제니까.

프레시안 : <23가지>에서도 교육과 관련된 잘못된 인식을 언급했다(‘Thing 17 :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장하준 : 그렇다. 현재의 교육 문제를 바라볼 때,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인식하는 걸 바로잡고 싶었다. 자기 계발을 위해서 한국 국민 전체가 대학을 가도 상관없다. 다만 ‘교육을 더 시키면 경제가 성장한다’ 이런 환상은 가지지 말아야 한다. 대학 진학률이 다른 나라의 3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스위스의 예를 보라.

스위스에서는 고등학교 정도만 마치고도 특정한 기술을 습득해서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1억~2억 원대의 연봉을 받으면서 다닐 수 있는 직업이 있으니까 굳이 대학을 갈 필요가 없다.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니까 너도나도 기를 쓰고 대학에 가려고 그 난리를 치면서 아이도, 부모도 불행한 삶을 산다.

그렇다면, 이런 불행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새로운 체제를 고민해야 하는데….

프레시안 : 마침 한 10대 학생이 질문을 해왔다. 입시 과제로 <23가지>를 읽었다는 이 학생은 특히 방금 언급한 ‘학력 인플레이션’을 비판한 대목을 인상 깊게 읽은 모양이다. 모두가 다 불행한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왔는데….

장하준 : 입시 과제라니…. (한숨) 한 가지 아이디어를 말하자면, 정부 개입을 통해서 의도적으로 직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런 일이 없었던 게 아니다. 한국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전통 때문에 (의사 빼놓고) 엔지니어와 같은 이과 직업을 천시했다.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한국 대학의 정원을 보면 문과 1명당 이과가 0.6명이었다.

이게 1970년대 말에는 1:1로 바뀌었다. 정부가 이과의 정원을 늘리고, 지원을 많이 한 것이다. 또 경제 발전을 하면서 엔지니어들이 취직할 수 있는 좋은 직장도 많이 생겼고. 이렇게 한국은 정부 개입을 통해서 직업 구조를 바꾼 경험이 있다. 예전에 했다면 지금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과학자, 엔지니어로 성공할 수 있는 우수한 인력이 의과대학으로 몰리는 게 문제라면 복지 제도의 강화를 통해서 자격증을 평생 끼고 살지 않아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런 체제에서는 젊은이들이 여러 가지 가능성에 도전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학력 인플레이션 현상을 막으려면 스위스처럼 학력에 관계없이, 능력만 있으면 높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임금 보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직업 교육을 대폭 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실 한국은 옛날에 공업고등학교에서 얼마나 우수한 인력을 많이 배출했나? 지금은 이런 인력 배출 체계가 다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공업고등학교에 파격적인 지원을 하고, 그런 공업고등학교 출신을 중용하는 기업에 혜택을 준다면 분위기가 바뀌지 않을까? 정부가 바꿀 마음이 없으니까 안 바꾸는 거지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바꿀 수야 없겠지만…. 한국에서 공대를 잘 안 가려고 하는 경향도 20년간의 노력을 통해서 바꾸지 않았나?

“’88만 원 세대’, 복지 국가로 숨통 터주자”

프레시안 : 20대의 청년 실업자는 윗세대의 고용 안정을 보장해주고, 10~20대의 이른바 ‘알바’는 저임금 노동으로 한국 자본주의의 밑바닥을 지탱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염두에 두고 한국의 20대는 ’88만 원 세대’라고 불리는데….

장하준 : 나는 1963년생이다. 나를 포함한 40대 이상의 세대가 (그럴 의도야 없었겠지만) 그 밑의 세대한테 큰 죄를 짓고 있다. (한숨) 사실 1980년대 중반에 대학을 입학한 이들은 좋은 대학을 나오면 학점이 엉망이라도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잘 먹고 잘 살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요즘 20대들은 기성세대와 비교해서 몇 배나 더 노력하고, 스펙(specification)을 쌓아도 대기업은커녕 중소기업 취직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구조를 만드는 데 역할을 했고, 또 바꾸기는커녕 방치한 기성세대가 철저하게 반성을 해야 할 대목이다. 더 늦기 전에 역시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프레시안 : 어떤 대안이 있을까?

장하준 : 나는 이런 문제도 복지 국가의 강화로 어느 정도 해결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만약 복지 제도가 뒷받침이 된다면, 설사 20대에 소득이 낮거나 고용의 질이 떨어지는 비정규직을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생존에 큰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서 도약을 꿈꿔볼 수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복지 제도가 없으니까 한 번 질이 낮은 노동 시장에 빨려 들어가면 빠져나올 길이 없다. 그러니 많은 20대들이 중소기업이든, 비정규직이든 일단 취직부터 하고 보라는 기성세대의 다그침에도 꿈쩍도 않고 공무원과 같은 안정된 직장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나마 안착에 성공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아메리카드림’이라는 말이 있다. 신분 사회의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는 가난한 집안 출신의 신분 상승이 힘들지만, 단 돈 몇 달러를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간 이들 중에는 신분 상승에 성공한 사람이 나왔다는 걸 상징하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정반대다. 각 나라의 계층 이동성을 비교 조사한 연구를 보면, 미국이 더 어렵다.

계층 이동성은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와 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영국에 비해 더 높고, 영국은 미국에 비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288쪽). 복지 정책이 잘 된 나라일수록 계층 이동이 더 활발한 것이다. 한국에서 복지 국가를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불행한 세대인 20대의 숨통을 터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프레시안(손문상)

“주가 2000? 갈 곳 없는 투기 자본의 작품”

프레시안 :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외환 시장의 불안이다. 일관되게 외환 시장에 대한 통제를 주장해 왔다.

장하준 : 오가는 자본을 통제해야 한다. 주가 2000이 넘었다고 좋아하는데 한국 경제의 상황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다. 선진국이 경제 위기 때문에 이자율을 낮춘 탓에 모든 후진국에 돈이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다. 한국의 주가가 2000을 넘은 데도 바로 이런 유동 자금의 영향이 크다.

이렇게 자본이 집중되면 인플레이션 압력을 받아서 물가가 불안정해지고, 환율이 평가 절상돼 수출이 어려워지며, 자산 시장에 거품이 생겨서 한 나라의 경제가 병든다. 오죽하면, 요즘에 세계통화기금(IMF)이 전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자본 시장을 통제하라고 권고하겠는가?

이런 잘못된 상황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가 자본 시장을 통제하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 각국이 자본의 유출입을 어렵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내놓고 있다. 예를 들자면, 예치금 제도가 있다. 국내에 투자한 외화의 일정 액수를 예치해 뒀다가 1년 내에 돈을 빼려고 하면 예치금을 몰수하는 제도다. 또 자본 이득세를 원천 징수하는 방법도 있다.

한국 정부도 은행세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다른 나라에서 시행되거나 논의되는 제도와 비교하면 아주 미약한 수준이다.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외환 시장에 대한 통제가 불가피한데도 이렇게 손을 놓고 있으니…. 이 정도의 개입으로는 외환 시장을 통제할 수 없다.

외환 보유고가 약 3000억 달러나 되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그 정도면 하루 전 세계 외환 시장 거래량의 약 15% 정도다. 이론상으로는 하루 8시간 중 1시간 30분이면 한국의 외환 보유고가 다 동날 수도 있다. 중국의 외환 보유고는 약 2조5000억 달러 정도다. 많아 보이지만, 하루 외환 시장 거래량을 조금 넘는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온 세계의 외환 투기꾼이 마음먹고 이틀만 공격하면 중국의 외환 보유고도 거덜 난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 시장을 그냥 열어놓고 세계의 투기꾼이 마음대로 오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금융 허브? 한국이 따르려던 두바이, 아일랜드 다 망했다”

프레시안 : 2008년 통계를 보면 국제 금융 시장의 거래 규모가 3조2000억 달러다. 반면에 실물 거래는 300억 달러를 약간 넘는다. 장하준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도 금융보다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실물 경제를 강조해 왔다.

장하준 : 내가 반(反)금융주의자라고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사실 금융이 없었더라면 자본주의가 지금처럼 발전 못했다. 은행, 주식회사 등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금융 제도가 도입되는 것을 놓고서 정작 자유 시장주의자들은 반대했지만, 그런 제도가 있어서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가능해진 것이다.

내가 비판하는 것은 ‘금융을 위한 금융’이다.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규제 완화를 통해서 팽창한 금융 경제를 비판하는 것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역임하고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미국 금융계의 대부 폴 볼커가 이런 얘기를 했었다. “지난 몇 십 년간 이뤄진 금융 혁신 중에서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은 현금 자동 인출기뿐이다.”

지금의 금융 혁신이 다 규제 완화, 파생 상품 등을 통한 사상누각이었다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위험 평가, 신용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개발하는 것과 같은 제대로 된 금융 혁신은 없었다. 심지어 아이슬란드는 은행 규제를 다 없앴는데, 그런 식으로 팽창한 금융 경제의 끝이 2008년 금융 위기로 나타난 것 아닌가?

이제 이런 금융을 위한 금융, 기반이 없는 금융은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지금 과잉 팽창된 금융 경제의 고삐를 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한국이 ‘금융 허브’ 어쩌고 하면서 아일랜드, 두바이 등을 모범으로 칭송했었지 않았나? 그 나라들이 어떻게 되었나? 다 망했다.

“불가능한 것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개혁’이다”

프레시안 : <23가지>를 비롯한 오늘 얘기의 핵심 결론은 시장 권력을 정치 권력이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모아진다. 그러나 초국적기업이든 금융 자본이든 간에 국경을 넘나드는 시장 권력을 국민국가 틀 안에 있는 정치 권력이 통제하는 게 가능할까?

장하준 : <23가지>의 독자뿐만 아니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만나는 학생들도 강의 시간에 그런 질문을 많이 한다. ‘세계 체제가 후진국에 불리하게 돼 있는 상황에서 도대체 뭐가 바뀌겠는가?’ ‘선생님이 얘기하는 게 좋은 것 같기는 한데 비현실적이다’ 등…. 이런 질문과 논평이 매번 나온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다 보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자, 과거로 눈을 돌려보자. 200년 전에 노예 해방을 얘기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100년 전만 해도 여성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감옥에 가뒀다. 50년 전에 지금 제3세계 해방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의 대부분은 유럽, 미국에서 테러리스트로 지명 수배를 받았었다.

불과 20년 넘은 시점인 1980년대 후반에 영국의 대처 수상이 이런 얘기를 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이 다수로서 민주주의를 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몽상가다.” (그 때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넬슨 만델라는 당시 25년 넘게 감옥에 있었다!)

현실은 어떤가? 200년 전, 100년 전, 50년 전, 20년 전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들이 다 벌어졌다. 사회 개혁이라는 게 원래 이렇다. 간단히 될 것 같은 일만 떠올리면 개혁할 게 아무 것도 없다. 아무리 불가능하고 어려워보여도 장기적으로 그것을 해나가려고 노력을 해야 개혁이 이뤄진다. 그래야 바뀌지 않을 것도 바뀐다.

2005년에 정승일 박사와 <쾌도난마 한국 경제>를 펴낼 때 복지 국가 스웨덴, 핀란드 얘기를 했었다. 그 책을 읽은 대다수 사람이 ‘한국 사회에서 웬 복지 국가?’ 이런 반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와 보니까 다음 대통령 선거의 화두가 ‘복지’라고 하더라. 진보·개혁 진영의 사람뿐만 아니라 복지 국가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경제 신문 기자까지 그러더라.

사람들은 항상 묻는다. “대안이 뭐냐?” 물론 주어진 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면 대안이 없다. 힘 있는 이들이 규칙을 만들어 놓고 다른 가능성을 봉쇄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대안을 말할 수 있겠는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력을 하면서 자꾸 다른 가능성을 타진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대안이 비로소 등장하는 것이다.

세상은 바로 그런 식으로 바뀐다. 나는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낙관적으로 사려고 노력한다. 2005년에 제기했던 복지 국가가 불과 5년 만에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되는 걸 보면서 다시 한 번 이런 삶의 자세가 맞다고 확신했다.

ⓒ프레시안(손문상)

“이 세 가지는 지금 당장 실천하자!”

프레시안 : 한국 사회의 시민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딱 세 가지만 말한다면?

장하준 : 지금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일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복지 국가를 발전시켜야 한다. 오늘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이것은 지금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종의 열쇠다. 둘째, 산업 정책과 같은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 개입은 나쁘고(독재?) 시장 방임은 좋다(민주주의?)’ 이런 식의 편견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셋째, 자본을 통제해서 거시 경제의 안정을 꾀해야 한다. 아까 얘기했듯이 외환 시장 또 국내 자본 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서 국민경제를 안정시켜야 한다. 이것 말고도 할 일이 많지만, 이 세 가지가 지금 당장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이런 일을 잘 해나갈 좋은 정치인을 뽑는 일이 또 시민의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장하준 : 그렇다.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 되는 게 참 힘든 일이다. 한국에 신경 써야 할 문제가 얼마나 많은가? 남북 관계부터 시작해서 고령화 문제, 이민 문제, 자본 시장 문제 등 고려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해서 시민의 의견을 가장 잘 대변할 정치인을 뽑아야 하니까.

<23가지>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들이 더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경제 정책이라는 게 소수의 전문가만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는 어렵기만 한 게 아니라, 일반 시민이 충분히 상식선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게 대부분이라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

이 책을 읽고서 시민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경제 정책에 목소리를 내기를 희망한다.

 Posted by at 9:18 PM

[전문] 장하준 교수 국회 강연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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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012011
 

일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제가 여기서 하는 얘기들이 그리 편치많은 않은 얘기일텐데 이런 자리 마련해주신 정두언 의원 이하 공동주최 의원님들, 여기 오신 의원님들 내빈 여러분 다 감사드립니다.

정두언 의원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2009년 4월, 작년에 이 자리에 서서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만들어 놓은 강의노트를 찾았는데 없어졌더라고요. 그래서 정확히 제가 어떤 얘기들을 얼마나 자세히 했는지는 기억은 못하겠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얘기들을 했죠.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나라당 정두언의원의 주최로 열린 ‘새로운 자본주의와 한국의 미래’강연회에서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장하준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김정근 기자
첫째로 지난 30여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2008년 금융위기를 가져왔는가. 그리고 또 무엇보다도 그 위기 이전에 이미 경제성장률 하락, 소득분배 악화, 경제불안의 증가를 가져왔는가에 대해 설명을 드렸고요. 그다음에 신자유주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영국에서도 금융위기를 계기로 해서 이건 뭔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그런 생각이 일고 정책을 바꾸는 마당에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이후 10여년 동안에 말하자면 금과옥조로 말하고 따라온 신자유주의에 대해 우리도 다시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한다. 그런 지적을 했습니다.

인제 또 얘기하면서 우리나라가 말하자면 전범으로 삼고 따라가고자 노력하고 있었던 미국의 경제사회모델이 자본주의를 운영하는 유일한 방식도 아니고, 더구나 제일 바람직한 모델은 더욱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 선진국 하면 그냥 미국 그렇게 생각을 하죠. 그래서 서양사람은 다 미국사람이라고 하고.

다른 유럽이나 이런 데서 온 서양사람이 들으면 질색할 일이죠.우리한테 일본사람이라고 하는 거나 비슷하니까. 우리한테는 미국이 워낙 큰 그늘이었기 때문에 미국이 제일 훌륭한 사회가 아니냐에 대해서 미국을 많이 따라가려고 했는데, 제가 그때 한 얘기는 미국이 첫째로 노동시간이 길다.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노동시간이 10% 많게는 30%까지 길기 때문에, 그냥 단순 1인당 소득으로 하면 구매력 기준 세계에서 생활수준이 제일 높은 것 같은데 노동시간당 소득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세계에서 7~8위 정도에 불과하다, 돈은 많지만 일을 많이 해서 번 것이기 때문에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꼭 좋다고 얘기할 수가 없다.

그리고 평균수명이나 유아사망률 이런 건강지표를 볼 때 세계 30위권정도밖에 안되고, 선진국 중에서는 단연 최고의 범죄율을 가진 나라가 꼭 바람직한 사회라고 볼 수 없다는 얘기를 했고요.

또 한 얘기가 지난번 노무현 정부 때부터 우리 정부가 추진했던 것 중 하나가 금융허브 건설이죠. 주로 하는게 규제완화인데, 그 뒤에 깔려있는 생각이 뭐냐면 탈산업사회화론, 지식경제론. 그래서 옛날처럼 제조업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지식산업, 한편으로 소프트웨어, 한편으로 금융 이런 것이 새로운 시대의 동력이 될거다 그래서 우리도 빨리 그거를 해야한다는 논리인데, 그것을 간단히 비판을 하면서 탄탄한 제조업 기반 없이 지속적 번영을 유지해 나가는게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금융중심지라는 것이 제조업 중심지를 따라 옮겨가는 것이거든요.(브로델 모델) 16세기 17세기 세계 금융의 중심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었고 네덜란드 벨기에 그 지역이 공업이 제일 발달했었던거고, 이후 영국이 산업혁명을 하면서 그 제조업 강국의 지위를 뺏아오니까 금융 중심지가 런던으로 갔고, 미국이 영국을 따라잡고 제조업의 리더가 되니까 금융중심지가 미국으로 올라갔단 말이죠. 그래서 금융중심지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제조업이 발달한 곳을 따라다니는 것이지, 금융만으로 발전한 나라는 없다.

물론 아주 작은 룩셈부르크 같은 도시국가는 예외로 하고요. 그리고 우리가 스위스, 싱가포르 흔히 금융허브로 성공한 것이 아니냐 생각한 나라들이 사실은 세계 5대 공업국에 속하는 나라들이다. 그러니까 스위스, 싱가포르 1인당 공업생산량으로 보면 스위스는 일본하고 세계 1,2위를 다투고 싱가포르는 4, 5위를 왔다갔다 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나라들이 금융으로 성공한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제조업 강국이다. 그리고 또 우리나라가 최근 금융허브전략 추구하면서 말하자면 모범으로 삼았던 나라들이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두바이 이런 나라들인데, 이런 나라들은 이번 경제위기에서 얼마나 엄청난 타격을 받았는지 주위를 환기시켰으면 합니다.

사실 아일랜드 같은 경우는 지난번 제가 말한 이후에 더 큰일이 났죠. 그래서 지난 3년간 국민소득이 30% 가까이 떨어지고 내년에는 얼마나 떨어질지 모르는 큰 위기에 처해 있는데, 그런데 주위를 환기시켜 드렸고요.

그리고 규제완화론에 대해 말했는데, 제 주장은 물론 기업에 방해되는 규제도 있지만, 기업에 도움이 되는 규제도 있다. 그래서 규제라는게 무조건 나쁘다는 식으로 보면 안되고, 어떤 영역에서 어떤 식으로 규제를 하느냐가 더 중요한거다, 그런 얘기를 했고요.

현재 우리나라 규제완화를 해야 경제성장을 잘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우리 경제의 문제가 규제가 너무 많은 부분도 있지만 일부분에서는 지나친 규제완화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는 얘기를 했어요. 자본시장 규제가 완화되니까 상장기업들이 샀다 팔았다 하는 부동주주들의 압력에 노출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이익을 내고 그걸 자기들에게 배당해달라는 것이거든요. 기업들이 어떻게 하겠어요. 우선 당장 급하니까 될 수 있으면 투자 안하고, 노동자 교육훈련에 쓰는 돈 줄이고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당장 단기적 이윤을 많이 낸다는거죠. 거기서 엄청나게 배당을 많이 해야합니다. 그래서 외환위기 10여년 보면 그 대부분의, 모 안그런 해도 몇해 있었지만 대부분의 해에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가져온 돈보다 주식시장이 갖다준 돈이 더 많아요.

우리가 이론적으로 배울 때에는 주식시장이라는 것이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제도라고 배웠는데 이런 식으로 단기주주의 압력에 노출이 되다보니까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돈을 갖고 오기보다는 갖다줘야합니다. 배당하고 자사주매입하고 해서. 그렇게 해서 설비투자, 기술개발 이런 곳에 과거처럼 적극적으로 못하게 되니까 기업의 장기적 미래에 문제가 된다. 그리고 노동시장 규제완화가 되면서 비정규직의 비율이 늘어났죠.

정규직도 직장의 안정성이 떨어지게 되니까 이게 어떤 현상으로 나타나냐 하면 젊은이들의 직업선택이 극단적인 보수화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제가 요번에 낸 책에서도 이 예를 크게 썼는데, 우리나라 지금 상위권에 속하는 학생 80~90%가 의사나 변호사 이렇게 안정성 높은 직종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물론 죽을뻔 하다가 수술 받아서 살아난 일이 두세번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 의사예요. 하지만 어느 나라도 능력있는 젊은이들의 80~90%의 적성이 하나로 모이는 경우는 없거든요. 너 하고 싶은것 하면 안되고, 험한꼴 당하지 말고 공부 잘하니까 의대 가서 평생 쫓겨날 걱정 안하고 일해라, 이런 식으로 되는 겁니다.

이런 직업선택 편중현상이 제가 보기에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의 활력을 제공해줄 기초과학 연구나 기술개발에 종사하는 인력의 질을 떨어뜨리고,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활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거다 이런게 걱정인거죠.

이 이야기를 하면서 직장이 불안하더라도 복지가 잘되어 있으면 우리 젊은이들이 이렇게까지 보수화가 되지 않지 않았겠느냐. 제가 어떤 비유를 들었냐면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에 100km, 120km로 할 수 있다, 만약 브레이크 없는 차를 몰면 불안해서 20~30km 이상 운전할 수 없죠.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가다가 급한 일이 있으면 밟았다가 세우면 되고 우리가 빨리 운전할 수 있듯 잘 설계된 복지국가는 이런 브레이크 같은 안전장치 역할을 해서 국민들로 하여금 변화를 더 잘 받아들이고 더 진취적인 직업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이게 바로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큰 복지국가를 가진 나라들이 미국보다도 경제성장률이 빠를 수 있는 중요한 원인이다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인제 또 더한 얘기가 복지국가라는게 흔히 좌파정책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복지국가를 제일 먼저 만든 사람이 독일의 유명한 보수 정치가 비스마르크입니다. 비스마르크의 논리가 뭐냐면 분명히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다, 그런데 이걸 그냥 놔두면 사회주의자들이 세력을 얻어서 자본주의가 망한다는거에요.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 처음에 산재보험부터 시작해가지고 의료보험, 연금, 실업보험 이것을 차례로 도입해서 세계 최초의 복지국가를 만든건데, 이런 얘기를 하면서 한나라당이 진정한 보수정당이라면 복지국가를 강조해서 사회통합을 강화하고, 그래서 기존 체제를 더 강화하는 정도의 안목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대강 요약을 했는데 그러면 작년 4월에 물론 강연을 들은 분들은 그런 얘기 이런저런 했던 거 같은데 생각하실텐데 그렇지 않은 분들 중에도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다 하는 말씀을 하실텐데. 맞죠? 왜냐면 이번에 제가 새로 낸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읽어보신 분들이 있을텐데 그분들이 책을 읽은 기억을 떠올리시면 지금까지 제가 했던 얘기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제 책 얘기를 잠깐 하자면 이게 사실 한국 독자만을 위해서만 쓴건 아닙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전세계에 있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쓴건데, 그 책에서 하는 얘기하고 작년 여기서 하는 얘기는 대한민국 사정에 촛점을 맞춰서 쓴거니까 강조점의 차이가 있지만, 제가 이 자리에서 작년에 했던 얘기가 그 책에 많이 들어갔어요.

서비스중심경제론에 대한 비판이나, 금융시장 규제 완화에 대한 비판, 제조업의 중요성에 관한 이야기들. 이런 것들은 예전에도 많이 하던 거지만 이번 책에서 특히 강조를 했고, 복지국가를 자동차 브레이크에 비유한 것이나 한국의 의대편중현상에 관한 이야기, 미국이 왜 꼭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가 아닌가라는 것은 제가 이전에도 언급한 적은 있지만 책에 쓴 일은 없는데, 이번 책에 처음 쓰니까 그날 오셨던 분들이 말하자면 세계에서 그 얘기를 제일 먼저 들은 분들이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그날 제가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작년 4월에 와서 강의를 하면서 사실 제 새 책의 예고편을 틀어드린 것입니다. 그때는 새 책 제목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고 대부분은 구상은 끝났지만 몇 개의 장은 구상도 끝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영화로 치면 그날 보신 예고편은 개봉 직전에 틀어준 완성된 예고편은 아니고 처음에 영화제작 시작됐을때 사람들 관심끄려고 맛보기 예고편을 내죠. 그런 것입니다.

얼마 전 정두언 의원께서 이메일을 하셔서 요번에 한국에 오신다는데 이번에 새로 나온 책으로 강연하시면 어떠냐라고 했는데 제가 좀 망설였어요. 이미 여기 와서 예고편을 보여드렸는데 제가 와서 또 얘기를 하면 이미 영화가 나오고 나서 감독이 또 나와서 그걸 또 요약하고 그러는게 한 얘기 또하는 것 같아서 과연 하는게 맞는가 인제 그런 좀 고민을 했는데 그래도 결국 강연을 하는게 좋지 않느냐는 마음을 먹게 된 게 이번 책은 한국만을 대상으로 한게 아니기 때문에 책에서는 얘기를 안했지만 한국상황에서 할 필요가 있는 얘기들이 있고, 작년 강연 때 언급은 안했지만 책에 새로 들어간 얘기 중에 지금 한국사회에서 곱씹어볼만한 얘기들이 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강연을 하겠다고 동의를 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강의를 할텐데 일부 내용은 지난 해에 와서 한 것과 불가피하게 중복되는 부분이 있을텐데 그건 양해해 주시고요.

우선 금융을 이야기해보죠. 지금 아직도 2008년 좀더 길게 보면 2007년에 시작된 세계 금융 위기가 끝나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뭐가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죠. 2008년에 금융위기가 나니까 우리나라에서도 금융중시경제화계획이 주춤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아직 많은 분들이 그에 대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애요. 그런데 제가 거듭 말씀드리고 싶은게 지난 20~30년 동안에 미국 영국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일랜드, 아이슬랜드, 두바이 이런 식으로 해서 금융중심경제전략을 통해서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나라들의 성장이라는게 사실 진정한 금융의 생산성 향상보다는 규제완화에 의존했다는 점이죠.

미국의 경우 은행의 부채비율 규제하는 규칙을 없앴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옛날 재벌도 그런게 문제가 됐지만 돈을 막 빌려 사업을 하니 얼마나 돈을 많이 벌겠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옛날 재벌들이 부채비율이 400, 500%다 너무 높다고 했는데, 지금 외환위기 날 때 미국 금융기관들의 부채비율을 보면 예전 우리 재벌은 장난입니다. 3000%, 높은 경우는 5000% 되요. 그런데 그렇게 빚을 많이 내서 할 수 있으면 누가 돈을 못벌겠어요. 파생상품 같은거 나중에 밝혀졌지만 말도 안되는 상품 팔수 있도록 해주고, 신용평가기관이라고 그 기관들 때문에 우리나라 예전에 고생도 많이 했는데 나중에 금융위기 나고 미국 국회에서 청문회 해보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적당히 등급을 매겼다는 것도 밝혀지고 지금 이게 굉장히 허상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죠.

오죽하면 폴 볼커라는 분이 있죠. 현재 오바마 정부에서 경제재건위원회 위원장이고 레이건 대통령 때 그린스펀이 들어오기 전에 미국 중앙은행 연준의 의장을 한분인데 말하자면 미국 금융계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분인데, 이 분이 한 얘기가 있습니다.

지난 수십년 동안 금융 혁신했다고 했는데, 자기가 보기에 사회적으로 유용한 금융혁신은 오직 현금자동인출기밖에 없다는 혹평을 했어요. 제가 한 얘기가 아닙니다. 미국 금융의 대부라는 사람이 그정도 얘기를 했으니까 이게 얼마나 사상누각적인 금융발전이었는가를 알 수 있는거죠.

지난 번 강연에서도 강조했고, 오늘 강연에서도 강조하고, 책에서도 강조했지만 저는 흔히 오해하시는대로 반금융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도리어 저는 현대 금융 없이는 현대 자본주의도 없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책에도 소개를 해놨는데 재밌는게 뭐냐면, 옛날에는 도리어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이 애덤 스미스를 비롯해서 주식회사와 은행 제도를 반대했어요.

왜냐면 주식회사를 만들면 자기가 그 회사를 100% 소유하지 않고도 경영하기 때문에 완전히 자기 돈으로 하는 것보다 과다한 위험 부담을 진다는거죠. 자기가 다 책임을 안져도 되니까. 물론 그런게 있습니다. 주식회사나 은행이나 은행도 결국 자신이 갖고 있는 것보다 8배 9배 빌려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현대 금융제도를 반대했는데, 사실 그런 제도가 없었으면 아직도 자본주의는 수공업이나 소규모 공장에 기초한 체제였을거고, 바로 그런 주식회사, 은행제도가 있었기에 대규모의 자금이 동원되고 새로운 자금이 창출되고 해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거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난 3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금융, 그리고 우리나라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지금 정부에 이르기까지 간절하게 추구하고 싶어해 온 금융 모델은 실물경제와 유리된 금융을 위한 금융, 그래서 결국 실물경제까지 망치는 금융이었다는 것을 명심을 해야되요.

그래서 금융을 발전시켜야 하지만 실물과 함께가는 금융, 튼튼한 실물경제에 기초한 금융이 되어야 한다. 그냥 정말 돈놓고 돈먹기하는 금융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융규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되는 거죠. 금융규제 안하는게 좋다고 하지만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90년대 초중반까지 은행들의 대출을 규제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일정 부분을 말하자면 기업들에게 대출을 해야하고, 소비자 대출은 상대적으로 규제를 했죠. 그래서 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은행 대출의 90% 정도가 기업대출이었는데 그거를 자유화하니까 은행들 입장에서 돈벌기 제일 쉬운 것은 주택담보대출이거든요. 담보물도 있겠다, 그리고 왠만한 사람들은 정말 그게 자기의 유일한 큰 덩어리의 재산이기 때문에 다른 것을 줄여가면서라도 주택담보대출은 갚는다는거죠. 그래서 은행들이 가장 좋아하는게 주택담보대출이예요. 그리고 그다음에는 월급을 차압할 수 있는 소비자 대출 이런건데 이걸 자유화하니까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이 대출 중에 기업들에게 빌려주는게 40% 될때도 안될때도 있어요.

그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대기업들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물론 그것도 아까 말씀드린대로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너무 많이 동원하면 단기주주 압력으로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기 쉬운데 일단 단기적으로는 그래도 자금 동원이 되는데, 중소기업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가 없는거죠.

그래서 이런 문제를 정책을 바꿔서 해결을 해야 될거고 그다음에 파생상품 같은 것은 제가 책에서 한 주장이 어떤 파생상품이 처음에 발명이 됐을 때 사회적 이득이 사회적 비용보다 크다는 것을 사전에 증명하지 못하면 거래를 금지해야 한다 저는 사실 이렇게 주장을 했어요.

얼핏 들으면 뭐 저런 과격한 주장을 한 것 같지만, 우리가 그런 것을 맨날 합니다. 예를 들어 의약품. 제약회사가 약 만들면 바로 팔 수 있나요. 절대 안되죠. 식약청에서 엄격한 검사를 받아야 하죠. 모든 약이 부작용이 있거든요. 이 약이 부작용보다 효과가 크다는 판명이 나고 그리고 인체에 큰 위험이 없다는 판단이 나야 팔 수 있죠. 자동차도 안전기준이 있고 다른 제품들은 미리 안전하면 팔 수 있는데 왜 금융제품만 일단 팔아놓고 그 다음에 문제생기면 그때 가서 보자고 하는지 저는 그게 말이 안된다는 거죠. 결코 과격한 주장이 아니라 우리 시스템의 안전을 높이려면 이런 것도 고려를 해야된다. 그래서 더 자세한 얘기를 할 시간은 없지만 이런 식으로 금융규제를 다시 생각할 때가 왔다는 겁니다.

그리고 금융문제 있어서 현재 우리나라가 시급하게 주의를 기울일 게 외국자본의 유출입에 대한 통제입니다. 최근에 북한하고 갈등에도 불구하고 코스피가 2000을 넘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하고 있죠. 일견 축하할 일이지만 사실 이건 걱정스러운 일이예요.

왜냐면 지금 우리나라 주가가 올라간게 우리나라 경제가 잘되어서라기보다는 주 원인이 아까 말씀드린대로 선진국이 유례없는 금융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이자를 엄청 낮췄습니다. 이자율이 0%에서 1% 사이예요. 그러니까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수익이 낮으니까 이자율이 높은 후진국으로 몰려듭니다.

우리나라 주가 많이 오른 것 같지만 남미, 칠레같은 데 가면 주식시장이 거의 2배가 뛰었어요 1년사이에. 그런 식으로 지금 엄청나게 고수익을 찾는 국제자본이 돌아다니면서 주가를 올린건데 이게 굉장히 부작용이 많다는 말이죠.

우리나라만 해도 지난 1년 반 사이에 통화가치가 한 30% 절상되면서 수출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 다음에 이런 또 자금이 유입이 되니까 주식시장을 필두로 해가지고 부동산 시장이라거나 나라따라 다르지만 부동산 시장이나 여타 자산시장에 막대한 거품이 끼고 있거든요.

이게 당장은 좋은 것 같지만 선진국들에서 어떤 이유가 되서 이자율이 올라간다거나 지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경험한 것처럼 큰 위기가 또 터지면 자금들이 선진국에서 그 위기가 터져도 그 자금이 선진국으로 다시 몰려들어요. 그래도 거기가 안전하다 해가지고.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 나라를 비롯한 많은 부동자금의 유입을 받은 후진국들이 경제위기를 겪을 수가 있는거죠. 그래서 사실 97년 아시아 외환위기도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그런 것에서 많이 원인을 찾습니다. 그 전에 특히 아시아 후진국으로 돈이 확 몰려들어갔다가 그게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된거죠.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우리를 비롯해서 자본통제를 시작했어요. 예치금제도라는게 있는데 그게 뭐냐면 돈을 갖고 외국인이 투자를 하러 들어올 때 갖고 오는 돈의 – 나라마라 다른데 – 일정한 비용을 중앙은행에 예치를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돈을 1년 이내에 갖고 나가면 예치금을 못받아요. 1년 이후면 받고.

그러니까 너무 단기적인 투자를 못들어오게 하자는거죠. 그리고 또 외국인 자본거래 이득에 대해 특히 국채거래를 통한 이득에 세금을 걷는 나라가 많이 새겼고, 금융기관들이 외환관계 파생상품거래하는데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 그리고 나라에 따라서 은행세나 자본거래세 뭐 그런 것을 도입하려고 하는데, 많은 나라들이 지금 이거를 실시하고 있거나 일부 정책은 적극적으로 고려를 하고 있습니다.

재밌는게 과거에 이런 정책을 한다고 하면 말하자면 핏대를 올리며 반대하던게 IMF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IMF가 후진국에 다니면서 대부분에 이런 정책을 쓰라고 권고를 하고 다녀요. 그렇게 국제적인 유동자본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죠.

우리나라도 지금 은행세를 도입한다 뭐한다 하면서 이런 정책을 일부 실시를 하고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강도가 너무 미미하기 때문에 좀더 강화를 해야되요. 사실 다른 때와 다른게 지금은 IMF도 그걸 권고하고 다니는 상황이라 국제적 욕먹을 일도 없고, 다른 나라도 다 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것을 한다고 특별히 불이익 받을 이유도 없거든요. 나중에 이게 다 빠져나간 다음에 당황해서 고생하지 말고 미리미리 이게 너무 많이 들어오는걸 막아야 한다는 그런 얘깁니다. 그래서 이 금융시장은 그렇게 보고요.

그다음에 인제 제가 또 여기와서 강연한다니까 일부 언론에서 장하준 교수는 FTA를 반대하는 걸로 유명한데 그런 사람이 한나라당에서 강연한다니까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다 그런 얘기를 썼는데, 그래도 그런 얘기도 워낙 현안이니까 꼭 여러분이 찬성해주시라는 의미에서라기보다는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책에서 자유무역으로 부자된 나라가 거의 없다 이런 장이 있는데, 거기서 자유무역 전반에 대해서 이게 말하자면 후진국에는 잘 맞지 않는 정책이라는 말을 해놨는데 거기에 사실 한미FTA나 한EU FTA같은 양국간의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는 사실 얘기를 해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노무현 정부가 처음에 얘기를 꺼냈을 때부터 한미, 한EU FTA처럼 선진국하고 하는 FTA에 대해서 특히 반대를 해왔는데 사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중요한 것만 얘기를 드리자면 첫째로 미국하고 한다던가 EU와 한다던가 양국간의 FTA 하면 이게 진정한 자유무역이 아니예요. 왜냐면 우리가 예를 들어 미국 차, 미국 소고기를 무관세로 수입을 하면, 결국 그걸 통해가지고 우리나라 관세 자체를 그런 제품에 대해 없애지 않는한, 일본차, 호주 소고기에 대해 차별을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순수 자유무역론자들은 양국간 자유무역협정은 자유무역이 아니라고 노골적으로 얘기합니다. 하려면 모든 나라와 다 해야지 왜 한 나라하고만 하는거죠. 그래서 자유무역 이론가로 유명한 콜럼비아 대학의 인도계 교수인데 바그와티 교수라는 분이 계신데 이분은 뭐 아주 내놓고 이런건 자유무역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여러나라 얽혀서 하지 말라고 WTO한건데 왜 자꾸 그런걸 하냐고 노골적으로 비판을 합니다.

그래서 인제 이런 얘기를 하면 일부에서는 한나라하고만 하는게 아니라 모든 나라와 FTA 하면 되지 않냐고 하시는데, 이렇게 하다보면 그 협상 비용도 많이 들고 그리고 시스템이 굉장히 복잡해지죠. 양자간 협상 하다보면 예외규정을 굉장히 많이 만들게 돼서 대체 뭐가뭔지 알 수가 없게 되는데 그래서 다같이 한번만 협상해서 끝내자고 하는게 WTO인데, 이 질서를 인제 왜 우리나라가, 말하자면 앞장서서 깨고 다니는 건지 그것도 의문이고요, 그리고 그런 얘기를 하면 이미 자유무역협정이 수백개 있는데 그걸 하지 않으면 낙오된다, 극단적인 분은 쇄국하자는 말이냐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그거 아니죠.

우리나라가 얼마나 개방된 나란데 FTA 안한다고 우리나라가 갑자기 북한이나 쿠바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그렇게 국제무역에서 성공했지만 어디랑 FTA 맺어서 그런거 아니거든요. 물건이 좋고 가격이 좋으면 사게 되어 있어요. 물론 관세라는게 영향을 미치지만 결정적 요인은 아니거든요. 지금 존재하는 자유무역 협정의 대부분이 EU나 남미의 mercosur라고 해가지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그 부근 나라들이 맺은 협정인데 대부분 비슷한 나라들끼리 하는겁니다.

그런건 사실 좋아요. 수준이 비슷한 나라들끼리 자유무역을 하면 시장도 넓어지고 서로 자극도 돼서 실보다는 득이 더 많습니다.

제가 문제를 삼는 것은 우리나라가 칠레같이 낮은 나라와 하는 것이 되었건, 우리보다 높은 미국과 하는 것이 되었건 수준차이가 나는 나라들끼리 하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 얘기를 조금 있다가 자세히 하겠는데. 지금 보면 미국과 양자간 자유무역협정 맺은 나라들이 대부분 티셔츠 한장이라도 더 팔아보려는 중남미나 중동의 가난한 나라들입니다.

남미의 페루라거나 중동의 요르단 이런 나라들인데, 그래서 사실 경제력이 높은 나라 중에 미국과 자유무역 하는 곳은 협정 맺은 곳은 싱가포르와 호주밖에 없죠.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로서 워낙 특이한 나라고, 호주는 뭐 사실 워낙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자원으로 먹고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원래 제조업이 발달이 안되어 있어서 미국하고 한다고 해도 크게 잃을 건 없다 이런 계산을 한 것 같은데, 사실 이게 과연 이런 식의 양국간의 자유무역협정이 좋은것인지 생각을 해봐야 되고요.

무엇보다도 제가 이런 선진국들하고 이런걸 맺는 걸 반대하는 이유는 비슷한 나라끼리 하면 자유무역이 좋은데 수준차 나는 나라하고 하면 단기적으로는 물론 서로 어느 정도 이익을 볼겁니다. 시장이 확대되고 하니까. 장기적으로 보면 뒤떨어진 나라가 앞선 나라를 따라잡는데 장애가 되는 거죠.

극단적 예를 들어보면 우리나라가 만약 1960년대에 미국하고 자유무역을 맺었다면 지금 현대자동차 없습니다. 삼성전자 없고, 현대조선 없고, 우리나라 포항제철 없고 우리나라 아직도 가발이나 합판 만들어서 수출하고 있을거예요.

물론 우리가 지금 그런 정도의 단계는 아니지만 과연 어느 단계냐. 지금 우리나라가 뭐 전자니 조선이니 세계에서 1,2위를 다투는 분야가 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산업 생산성이나 국민소득이나 이런게 선진국들의 50% 수준이예요.

제일 잘사는 나라들이 미국, 스위스, 스웨덴 이런 나라들 보면 국민소득이 대략 4만에서 4만 5천달러 사이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2만달러 되다 안되다 하잖아요.

그리고 산업별로 생산시설 비교한 것 봐도 전자같은 몇 개 분야 빼고는 다 대부분이 생산성이 선진국의 50%라는거죠. 그래서 지금 격차가 있는데 과연 우리가 앞으로 진짜 4만달러짜리 나라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어떤 고급 산업을 미국이나 EU같은 곳과 완전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면서 개발을 시킬 수 있는가. 저는 그게 의문이라는거죠.

그래서 인제 이런 얘기를 하면 아 뭐 인제 경쟁을 하면 자극이 되어서 생산성 증대 효과가 있으니까 그런거로 따라잡지 않겠냐는 말씀들 하시는데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얘깁니다만 경쟁 문제를 생각할 때 항상 같이 생각해야할 게 능력이거든요. 능력이 너무 차이가 나면 경쟁을 하면 도태가 되거나 더 떨어지지 따라잡지 못합니다. 제가 어떤 비유를 잘하냐면 예를 들어 한 5등 정도 하는 학생인데 그 학생을 1등짜리만 모여있는 반에 집어 넣어요. 그러면 그 학생이 자극이 되어서 그 학생이 1등짜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꼭 된다는건 아니지만.

예를 들어 10등 15등 하는 학생을 1등짜리 반에 집어넣으면 경쟁과 자극 엄청 되죠. 자기들보다 훨씬 잘하는 학생들, 와 뭐 저렇게 잘하는 애들이 있냐, 경쟁과 자극이 엄청 되지만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알아듣지도 못하고 도리어 기죽어 더 떨어질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가 5등짜리 나라냐 10등짜리 나라냐는건데 제가 보기엔 아직은 10등짜리 나라라는거죠. 그런걸 한다면 예를들어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의 80% 수준에 가서 하면 경쟁자극효과 덕분에 따라잡을 확률이 상당히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거기까지 안왔는데 시기상조라는거죠. 다들 이런 문제에 대해 판단이 다르고 하시니 제가 꼭 맞다고 하고 싶진 않지만 다면적으로 고려를 해야한다. 그냥 넓은 시장이 열리니까 좋은것 아니냐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거죠.

그리고 다음에 얘기해 볼 것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감세 문제를 얘기를 해볼까요. 소위 그 감세론 특히 고소득층에 대해 감세를 해야한다는 주장이 일견 일리가 있습니다. 왜냐면 결국 투자하고 경제성장을 이끌어 나가는 것들이 말하자면 부자들인데, 그 사람들한테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가 잘되고 경제성장이 잘될거다 이런 주장인데요.

이게 문제가 이론적으로는 그럴 수 있는데 실제로 그런 식으로 경제가 성공한 예가 거의 없어요. 제일 이런 부자감세정책을 적극적으로 편 나라가 미국인데, 80년대 레이건 정부 때부터 해서 첫째로 규제완화를 해서 말하자면 부자들이 돈 벌 기회를 최대화 해줬고, 그리고 그에 대해 그 과정에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감세를 해주면서 더 그 돈 많이 가져왔으니까 더 투자하고 성장시킬거다 했는데 결과를 보면 비참하거든요.

1979년에 미국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였습니다. 이게 2005년 6년이 되면 23%가 되요. 엄청 인제 몰아준건데, 그러면 투자가 늘고 성장이 늘고 그래야 되는데 그렇지 않았거든요. 미국 투자율은 도리어 떨어졌고, 경제 성장률도 1960년대 70년대의 1인당 기준으로 연간 2.6%였는데 90년대 이후로는 이게 1.6%가 됐습니다.

돈을 그렇게 몰아줬는데 나오는게 없단 말이죠. 그래서 무조건 세금만 깎는다고 투자가 되고 성장을 촉진시키는게 아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뭔가 감세되는 부분이 투자로 들어갈 수 있는 정책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괜히 돈만 몰아주는데 도리어 성장은 더 안될 수도 있다는거죠.

이런 얘기를 할 때 제가 강조하는 것은 많은 분들이 세금이라는게 말하자면 정부가 걷어다가 어디다가 태워버리는 돈으로 생각하시는데 그거 아니죠. 그거 걷어가지고 길도 닦도 통신망도 깔고 공공교통도 운영하고 교육도 시키고 의료도 제공하고 하니까 그게 다 경제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물론 이걸 낭비적으로 쓸 수도 있어요. 엉둥한 데 투자를 해가지고 돈을 날릴 수도 있고, 그런 가능성이 있지만 그거는 세금을 얼마나 걷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걸 걷어다 어디다 어떻게 쓰냐 문제거든요. 그걸 논의를 해야되요. 그러니까 세금이 낮은 것 자체가 좋다면, 아프리카 경제가 제일 잘되야죠.

말하자면 거기 많은 나라들이 세금 걷을 행정력이 없어서 조세부담률이 10%도 안됩니다. 그러나 왜 그런 데 가서 투자를 안하고 그 세금이 훨씬 높은 스웨덴, 독일 이런 데 투자를 하냐는거죠. 세금을 많이 걷지만 잘쓰는 나라들은 그만큼 거기에서 얻는 게 있으니가 기업들이 가는거고, 세금을 아무리 안걷어도 정부가 해주는 일이 없으면 거긴 안가는 겁니다. 이거를 자꾸 세율 자체가지고 얘기하는 것보다는 세금을 어떻게 잘 쓰냐하는 이런 걸 얘기해야하는거죠.

그리고 인제 세금문제 나오면 바로 복지국가 문제가 나오는데요, 이 또 많은 분들이 복지국가라는게 부자라는게 돈뺏아서 가난한 사람한테 나눠주는거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시는데, 이거는 사실 우리가 미국같은 곳에서 시행하는 선별적 복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인도적 차원에서 형편이 아주 어려운 사람들에게 밥 굶지 않고 최소한의 식생활과 의료 교육 이런 혜택을 주는 그런 복지만 생각하니까 그렇습니다.

이번 책 21장에서 자세히 설명해놨는데 유럽의 여러 나라들 특히 핀란드, 스웨덴에서 하는 것처럼 모든 국민들이 다같이 세금을 더 내고 다같이 광범위한 복지를 보는 체제가 되면 복지국가가 도리어 사회의 역동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기본적인 교육 의료 주거 노후에 대한 보장을 해줌으로써 국민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해주고, 특히 중요한 것은 실업보험이나 재교육 지원을 통해서 재기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변화에 대한 저항도 덜하고 무엇보다 진취적인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 그래서 의대편중현상 그런 것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고요.

어떤 직장에 가서 거기서 뭐 어떤 이유로건 일단 도태가 되면 그 다음에 인생이 끝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느 확신이 있어야 그래 나도 여기 한번 도전해보자는 정신이 생기는거죠.
우리가 얼핏 생각할 때는 스웨덴 이런 곳이 복지도 크고 정부개입도 크고 그러니까 예를 들어 자유무역에 반대할 것 같은데 미국보다 그런 나라들이 자유무역에 대한 반대가 훨씬 적습니다.

그런 나라에서 물론 무역이 개방이 되어 있어서 외부에서 경쟁이 들어오면 직장을 잃을 확률이 높죠. 그렇지만 그런 나라에서는 직장을 누가 바꾸는걸 좋아하겠습니다만 직장을 잃는 것이 인생의 끝이 아니거든요. 일단 먹고살 만큼 실업수당이 나오고 재교육 받아서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건데 미국에서는 직장을 잃으면 병원도 마음대로 못갑니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없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그 노조같은 곳에서 그렇게 보호무역에 대한 압력을 넣고 경쟁을 싫어하는거예요.

그래서 도리어 그런 식으로 복지국가를 해주는게 국민들에게 더 개방적이고 경쟁을 받아들이는 체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면 아 뭐 실패한 사람을 도와주면 자꾸 사람들이 안이해지지 않겠느냐는 말씀들이 있는데 이것도 또 뭐 대단히 얼핏 듣는 것처럼 반자본주의적이 주장이 아니예요. 왜냐면 이게 기업한테는 해주고 있거든요.

기업에는 파산법이 있습니다. 파산법을 통해 파산을 선언하면 기업의 상태에 따라 법정관리를 하기도 하지만, 또 일단 채권자들에게 보호를 해주고 채권 어느 정도 탕감을 해주고 그리고 구조조정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기업가들도 사업을 하는데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요. 파산법 있기 전 자본주의 초기에는 파산을 하면 기업가가 자기 재산을 모든 것을 다팔아야 되는 것은 물론이고, 빚을 못갚으면 감옥에 갔어요. 그러니까 누가 사업을 하려 하겠습니까.
그때 누가 목숨을 걸고 하는거죠. 근데 이게 파산법으로 보호가 되니까 예를 들어 가장 잔혹한 자본주의로 알려져 있는 미국이 파산법이 제일 후합니다. 미국에서는 파산 선고하면 6개월동안 자동적으로 챕터 일레븐이라고 해서 채권자들이 돈을 못가져가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더욱 더 적극적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거든요. 제가 책에서 표현하기를 이 복지국가라고 하는게 그 노동자의 파산법이 될 수 있다. 재기의 기회를 주기 때문에.

이제 끝을 맺어야겠네요. 복지국가 얘기를 하다보면 결국 얘기가 귀결되는게 도대체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가 그런 얘기라고 생각하는데, 그 얘기로 끝을 맺고, 제 강연을 일단 마치고 질의응답하면서 서로 의견을 교환해봤으면 하는데요.

첫째로 어떤 나라가 더 좋은 나라냐 잘사느냐 표현을 여러가지로 할 수 있지만, 이걸 판단하는데 소득이 흔히 기준이 되죠. 부자나라가 가난한 나라보다 말하자면 더 좋은 삶은 누린다고 하고, 다른 조건이 비슷하다면 또 경제성장률이 높은 경제가 더 성공적이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나라 경우에는 지난 50년간 경제성장을 워낙 잘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소득이나 성장에 대해서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잘못된겁니다. 흔히 비판을 할 때 돈 많으면 뭐 티비 한대 더 사고 물건 좀더 사고 그런다고 그렇게 행복해지는거냐. 물론 일리가 있는 얘기지만 소득이 늘어나면 특히 소득수준이 낮은 단계에서는 소득이 늘어나면 이게 단순히 물건 더사는걸로 그치는게 아니죠. 밥도 더 잘먹고 돈있으니 불도 잘때서 병도 덜걸리고, 또 돈이 있으니까 병원에도 더 맘대로 갈 수 있고, 나라가 부자가 되면 그만큼 옛날만큼 힘든 일 오랜 시간 안해도 되거든요.

우리나라가 지금도 아마 선진국 중에서는 단연 최고지만, 지금은 아마 후진국을 포함하면 1등은 아닐텐데, 90년대 초반만 해도 세계에서 노동시간 최장이었잖아요. 이런것들이 다 소득이 늘어나면 그런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편히 살고 더 오래 살게 됩니다. 굉장히 중요한 얘기에요.

우리 지금 다 뭐 온 국민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래도 밥 먹고 살만한 나라가 됐기 때문에 그거 별거냐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1963년에 태어났는데 그 당시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53세예요. 물론 오래 사는 사람이 살지만 애들이 많이 죽기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 평균수명 77세가 됐습니다. 53세, 77세 요걸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면 얼마 전에 지진나서 난리난 나라 있죠. 아이티라는 나라. 그 나라의 평균 수명이 54세 55세예요. 77세면 스위스 평균수명이 78세 79세입니다. 우리나라가 말하자면 50년만에 하이티에서 스위스가 된거니까 엄청난 발전이죠.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물론 소득과 성장이 중요하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니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어느 정도 소득수준이 오르면 그 다음부터는 소득하고 행복하고 직접적인 관계가 없거든요. 논란이 많은데 학자들에 따라 1만달러다 2만달러다 암튼 그 선을 넘어가면 꼭 돈이 더 많다고 행복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지금 딱 그런 수준 쯤 와 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에 아까 강조했지만 아직도 성장이 더 필요한 나라죠.

우리나라가 진짜 뭐 스위스나 미국이 되도 더 성장을 안해도 되지만 아직 그런 단계가 아니고, 성장이 더 필요한 단계지만 이제 우리도 소득수준을 올리는 것 더해서 어떻게 국민들이 행복하고 의미있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단계가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제 점점 그렇게 되고 있지만 노동시간을 줄여서 국민들이 그런 시간을 자기 계발과 가족이나 이웃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쓸 수 있도록 하는게 필요하죠. 그리고 인제 충분히 그런걸 흡수할 만한 단계에 이르렀고요. 처음에 토요일날 일 안하게 한다 이렇게 하니까 굉장히 큰일날 것처럼 얘기하는데 지금 다 흡수가 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인제 그런거. 또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으니까 40대 남자 사망률이 세계 1위입니다. 수치스러운 타이틀 떨어내야죠. 물론 노동시간을 줄이면 아무래도 생산량이 줄어드니까 이걸 뭐 급격히 할 수는 없지만 생산력 향상 분을 말하자면 노동시간 감소로 물건을 더 받는 것보다 끌어내고 일자리 나누기를 통하면 일을 훨씬 덜 하면서 물론 일 열심히 하고 잘하는게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는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런 면도 생각을 해야되고.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고용안전이나 복지확대를 통해 미래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최소화해야한다.

재밌는 연구결과가 2,3년 전 미국 유력 의학지에 났어요. 뭐냐면 영국 사람들하고 미국 사람들의 건강지표를 비교해보면 미국 사람들의 건강지표가 안좋거든요. 그래서 그 원인이 뭔가 분석을 했어요. 식생활이 다른가 유전자가 다른가. 그런데 미국하고 영국은 인종이 비슷하니까 유전적 요인도 아니고 식생활도 요새 영국에서 많이 미국화가 되서 비슷하고 연구자들이 찾다 찾다 찾은게 미국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거죠.

직장이 더 불안하기 때문에 그리고 미국은 우리도 시작했지만 해고할 때 문자 보내서 20분 안에 건물에서 나가라는 식으로 하잖아요. 항상 그런 공포 속에서 살기 때문에 다른 요인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 차이밖에 없다는거죠. 그래서 그런 것도 한 연구 결과 보고 침소봉대할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도 생각을 해봐야 된다. 그리고 또 복지제도를 확대해가지고 형편이 좋지 않은 집 애들이 좀더 대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실패해도 재기할 기회를 줘야한다.

이게 단순히 도덕적 차원에서 하는 얘기는 아니예요. 옛날에는 아메리칸 드림, 미국의 꿈이라는 말이 있었죠. 유럽은 신분구조가 엄격했기 때문에 거기서 능력이 있고 노력을 해도 계층상승이 힘든데 미국에 건너가면 어디서 왔는지 영어를 하는지 못하는지 묻지 않고 일 열심히 하고 잘하면 성공한단 말이죠. 그래서 많은 유럽 사람들이 그 꿈을 찾아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몇십년 사이에 역전이 됐어요. 요새 나오는 연구를 보면 계층상승이 유럽이 훨씬 더 쉬워졌습니다. 특히 뭐 북구나 네덜란드 독일 이런 식으로 복지국가 잘 디자인되어 있는 나라들에서 계층상승률이 미국보다 훨씬 높아요. 이게 뭐냐면 우리가 진짜 능력에 기초해가지고 잘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보상을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이게 역동적이고 경제가 잘 되는 나라가 되는데, 이게 말하자면 계층상승이 잘 안되는 건 막히고 있다는 거거든요.

도덕적, 당위론적 차원에서 그걸 해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고 이런 얘기가 아니라, 경제 성장, 경제의 역동성을 위해서도 이게 필요한 것이다라는 말씀을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여러가지 요인을 얘기했고, 사람마다 중점 두는게 다르잖아요. 그래서 정답이 있을 수 없어요.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함이 남들과 같을 수도 없고 꼭 맞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로 인제 필요한게 그거를 인제 정치권에서 수렴을 하셔서 말하자면 열린 마음을 가지고 토론을 해가지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거죠. 제 바람은 오늘 제가 드린 얘기를 꼭 다 받아들여주시라는 것 보다도 한나라당이 뭐 우리나라 말하자면 양대 정당 중 하나고 현재 집권여당인데, 그 당이 그 합의를 도출하는데 말하자면 주도적인 역할을 안하면 누가 할건가. 오늘 한 얘기가 한나라당이 그런 역할을 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면 제가 더 이상 바랄 바가 없겠다. 그런 말씀 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2271646082&code=9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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