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기반 SNS 인스타그램 인기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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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12011
 
여전히 SNS의 힘이 큰 발휘가 되고 있는 가운데 빠른 속도르 SNS 업계에는 새로운 서비스들이 하루가 다르게 나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SNS 업계에는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독특한 서비스들이 나오고 있다. 얼마 전 IT 전문 매체인 테크 크런치에서는 이런 SNS 서비스 중에서 트위터, 포스퀘어와 같은 대표적인 서비스들의 성장세를 위협하는 인스타그램을 소개하였다. 오늘은 또 하나의 돌풍을 몰고 올수도 있는 ‘인스타그램’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인스타그램(instagram)’은 어떤 SNS 인가?


‘인스타그램(instagram)’은 작년에 2명의 스탠포드 학생들에 의해 개발된 아이폰 기반의 사진 공유 SNS이다. 즉, 자신의 사진과 ‘인스타그램(instagram)’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함께 공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스타그램(instagram)’은 서로 함께 공유하는 사진들을 구경하고 추천을 할 수가 있으며, 댓글도 남길 수 있다. 즉, 이런 서비스로 자신의 사진에 대한 반응들을 다양하게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진을 촬영할 때 12가지 스타일로 보정이 가능하고 ‘인스타그램(instagram)’을 통해 공유되는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진들을 모아서 볼 수도 있다. ‘인스타그램(instagram)’의 개발자인 2명의 스탠포드 학생은 “단순한 이미지 공유 서비스가 아니라 사용자들에게 자신의 주위 세상을 발견하게 해주는 새로은 엔터테이먼트 플랫폼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현재 ‘인스타그램(instagram)’은 아이폰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그외의 디바이스에서는 불가능하다.

‘인스타그램(instagram)’ 다운받기

직접 해본 ‘인스타그램(instagram)’


 

 

‘인스타그램(instagram)’을 앱스토어에서 즉시 다운받아 실행해 보았다. 일단 차분이 기능들 하나씩 살펴보았는데 하트 모양의 아이콘을 눌러보니 한눈에 반할만한 다양한 사진들이 있었다. 그림에서도 보이듯이 하트 모양의 아이콘은 ‘인스타그램(instagram)’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인기있는 사진들을 모아서 보여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오른쪽 그림은 자신의 프로필에 대한 설정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인스타그램(instagram)’은 현재 트위터와 페이스북 연동도 쉽게 할 수가 있어서 보다 많은 사진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앱 자체에서 검색 서비스도 제공해주고 있다.

 

역시 사진 관련 어플이다 보니 직접 안찍어 볼 수가 없지 않은가? 얼른 포스팅 하고 있는 내 애장품인 맥에어를 찍어 보았다. 사진을 찍으면 하단에 여러게의 신발 모양의 아이콘이 나온다. 이것은 각각 특징을 살려주는 보정 효과 옵션들이다. 사진을 찍고 올리면 가운데 그림과 같은 화면이 나온다. 좋아요를 할 수 있는 버튼과 댓글을 남길 수 있는 버튼이 있다. 오른쪽 그림은 가운데 그림의 오른쪽 부분의 ‘….’을 누르면 나오는 옵션들이다. 포스트, 포스트의 링크를 공유할 수 있고 이메일로도 쉽게 사진을 보낼 수 있으며 댓글 관리도 할 수가 있다.

마무리…


스마트 기기가 대거 출현하고 있는 것처럼 SNS 역시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출현하고 있다. 오늘 소개한 사진 공유 SNS는 그저 사진밖에 올리 수 없어서 별 다른 감흥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instagram)’ 통해 사진을 공유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즉각적으로 오는 시각적인 감각과 함께 감성을 느낄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이것이 차츰차츰 쌓이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여러분은 원하는 사진을 구하고 싶을 때 ‘인스타그램(instagram)’에 접속하고 있을 것이다.

 

http://v.daum.net/link/15611099

http://v.daum.net/link/15619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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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그인 없는 공인인증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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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12011
 
[단독]PC에 공인인증서 설치할 필요 없어진다
[입력날짜: 2011-03-18 15:28]
 
 

스마트폰에서 직접 공인인증서 발급 받아 인증

[보안뉴스 오병민] 금융업계에 따르면 공인인증서의 보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활용한 ‘플러그인 없는 공인인증서비스(가칭) ’를 올 하반기부터 도입할 전망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서비스가 도입되면 액티브엑스나 자바 플러그인 없이 공인인증서를 이용할 수 있어 현존하는 모든 웹브라우저와 스마트폰 및 태블릿PC에서도 인터넷뱅킹을 웹을 통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에 준비 기간을 거쳐 하반기 도입을 목표로 하는 ‘플러그인 없는 공인인증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이번 서비스의 개요를 밝히는 설명회가 3월 25일 개최될 계획이다.

이 서비스는 스마트폰에서 공인인증서를 직접 발급받아 스마트폰으로 인증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PC에서 인터넷뱅킹을 접속할 때 PC 대신 스마트폰에서 인증 하는 방식인 것. 이 방식은 스마트폰에서 공인인증서를 직접 발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PC 해킹으로 인한 공인인증서 유출을 막을 수 있다. 그동안 공인인증서는 PC의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는 사용자가 많아, PC 해킹으로 인해 공인인증서 유출 문제가 자주 도마에 오르곤 했다.

사실 은행권에서 이용하는 스마트폰 뱅킹 서비스가 이와 유사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 뱅킹 서비스는 공인인증서를 PC에서 스마트폰을 업로드 해야 했고, 각 은행마다 공인인증서가 각자 저장됐기 때문에 범용성이 부족했다. 그러나 이 서비스는 모든 은행에 적용할 수 있으며 PC의 인터넷뱅킹과도 연동할 수 있어 활용의 범위가 더욱 넓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동안 공인인증서 프로그램은 액티브엑스로 구현돼 있어 보안성 문제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제외한 웹브라우저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물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액티브엑스 대신 자바 플러그인을 활용한 공인인증서 서비스가 제시되기도 했지만, 이 방법 역시 플러그인을 PC에 설치해야 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어 크게 활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도입되는 서비스는 액티브엑스나 자바 등 PC에 설치되는 플러그인 없이 구현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고 보안성이 강화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PC와도 연동해 이용할 수 있어, 은행이 바뀔 때마다 매번 공인인증서를 설치하는 부담도 줄일 수 있게 된다.

한편 금융업계에서는 공인인증서를 보호할 수 있는 보안토큰을 소프트웨어로 구현하는 기술도 제시되고 있다. 하드웨어 형태의 보안토큰은 공인인증서의 유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됐었으나 하드웨어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에 사용자가 적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방식을 도입하면 이 같은 불편은 조금이나마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PC에 설치된 공인인증서는 PC해킹으로 유출될 경우 여러 가지 부분에서 악용될 수 있다”면서 “그러나 플러그인 없는 공인인증서비스와 소프트웨어 보안토큰 서비스를 이용하면 이런 문제에 대한 우려는 점차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병민 기자(boan4@boannews.com)]

 Posted by at 5:50 PM

디도스 공격 표적된 한국 보안약한 ‘액티브X’ 탓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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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082011
 

한겨레 | 입력 2011.03.07 21:00 | 수정 2011.03.08 08:40

[한겨레] 초고속망도 전염속도 높여

지난 3일부터 사흘간 인터넷 사이트 40곳을 겨냥해 벌어진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에 7만여대가 넘는 ‘좀비피시’가 동원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09년 7월7일 ‘디도스 대란’에 이어 20개월 만에 ‘공격자의 악성코드 유포→파일공유 사이트 통해 감염→대규모 좀비피시 발생 →디도스 공격→좀비피시 하드디스크 파괴’가 반복된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7일 “이번 디도스 공격에 동원된 좀비피시는 7만7207대이고 이중 하드디스크가 파괴되는 피해를 입은 피시는 390대”라고 밝혔다. 2년 전 공격 때 동원된 좀비피시 11만5044대보다는 적지만 공격 초기부터 악성코드 유포경로를 파악하고 백신을 보급해 확산 차단에 나선 것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규모다. 대규모 디도스 공격이 반복되는 이유는 공격자의 범행말고도 국내 고유의 인터넷 사용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외국에서도 가끔 디도스 공격 피해가 발생하고,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인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유사한 공격을 받곤 하지만 국가 단위에서 대량으로 좀비피시를 만들어 디도스 공격에 나서는 사례는 드물다. 인터넷진흥원의 한 관계자는 “2009년과 2011년 국내에서 만들어진 좀비피시 규모와 디도스 공격은 국제적으로도 두드러지는 사례”라며 “초고속 인터넷망이 잘 갖춰져 어느 나라보다 공격의 효과가 크다는 점과 파일교환 사이트 및 액티브엑스(X) 등 보안에 취약한 서비스를 많이 쓰는 국내의 인터넷 상황이 한 배경이다”고 지적했다.

보안업체인 이스트소프트도 이날 보안보고서를 발표해, 국내 웹하드 업체가 해커의 주요 공격대상이 되는 이유로 업체의 보안 무방비와 함께 액티브엑스를 통해 사용자 피시에 설치되는 프로그램을 지목했다. 액티브엑스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터넷익스플로러에서만 작동하고 모바일에선 쓸 수 없는 기술장치다.

방통위와 행정안전부 등은 2009년 디도스 대란 이후 인터넷 보안과 비표준의 문제가 액티브엑스와 관련이 깊다는 판단에 따라, 액티브엑스 탈출 방안을 모색해왔지만 상당수 공공서비스와 금융서비스는 액티브엑스 없이는 여전히 이용이 불가능한 상태다. 특히 스마트폰과 태블릿피시 등 액티브엑스 서비스를 전혀 쓸 수 없는 모바일 환경을 맞았지만, 액티브엑스 위주의 국내 인터넷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Posted by at 3:15 PM

주커버그를 해킹한 해커의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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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012011
 

주커버그를 해킹한 해커의 제안
시사INLive | 백욱인 | 입력 2011.03.01 11:10

페이스북 창업자 주커버그. 2010년 < 타임 > 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 전 세계 페이스북 이용자는 6억명에 이르고, 지난 1월 골드만삭스는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를 500억 달러로 추정하며 15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런 주커버그 팬 페이지가 지난 1월26일에 해킹당했다. 해커는 주커버그 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페이스북이 돈이 필요하다면 은행에서 빌리지 말고, 이용자들이 사회적 방식으로 페이스북에 투자하게 하면 되지 않느냐? 왜 페이스북을 노벨상 수상자 무하마드 유누스가 말한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지 않느냐? 여러분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이 메시지 마지막에는 위키피디아의 ‘소셜 비즈니스’ 항목과 페이스북이 주관하는 해커컵 2011 페이지의 링크가 설정되어 있다. 페이스북 측은 버그 때문에 해커가 침투하여 몇 개 페이지에 이상한 글이 올라왔고 이 문제를 시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1800명의 ‘좋아요’와 댓글 500개가 달렸다.

주커버그의 팬 페이지에 침투한 해커는 두 가지를 해냈다. 그는 페이스북 창업자 팬 페이지를 해킹함으로써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에서의 프라이버시 문제를 부각했다. 해커는 1월28일 ‘데이터 프라이버시의 날’을 앞두고 주커버그의 팬 페이지를 해킹함으로써 자신의 행위와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를 연결했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의 페이지가 해킹되는데 하물며 일반 가입자야 어떠하겠는가 하는 의문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던진 메시지이다. 그간 소셜 미디어의 사회적 위상과 책임에 대한 질문은 별로 없었다. 이 해커는 페이스북이라는 기업의 사회적 위상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꿰뚫었다. 소셜 미디어의 선두 주자인 페이스북은 ‘사회적’인 속성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 페이스북은 사람들의 관계를 이어주고, 사람들의 활동 결과물을 공유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생산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소유는 사적으로 챙겨지는 자본주의 기업일 뿐이다. 이용자의 사회적 활동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페이스북은 성격상 이미 당연히 ‘사회적 기업’이다. 단, 그들은 이윤을 이용자와 나누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적 기업이다. 해커는 이 지점을 분명하게 지적한 것이다.

간단히 넘어갈 수도 있는 이 사건을 계기로 과연 디지털 시대의 사회적 기업이란 뭘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콘텐츠의 생산만 사회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과 분배도 그리할 수 있는 기업이 디지털 시대의 사회적 기업 아닐까? 아직 이 같은 모델을 보여준 기업은 드물지만 P2P를 위시해 이미 다양한 형태의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백욱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

 Posted by at 2:51 PM

GNS 네트워크 시뮬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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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72011
 

Graphical Network Simulator
http://www.gns3.net/

설치 http://www.cyworld.com/smile_leehs/3178021
설정 http://www.cyworld.com/smile_leehs/3178021

 Posted by at 11:33 AM

Vista에서 Windows 2003 인증서 서비스 ActiveX 컨트롤 다운로드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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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42010
 

Vista에서 Windows 2003 인증서 서비스 ActiveX 컨트롤 다운로드 오류 해결 방법

Vista 이후의 윈도우에서는 Windows Server 2003에 있는 인증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하는군요. MS의 정책이 제맘대로라서 관리자, 사용자들만 고생이 많습니다.

니들이 고생이 많다… MS 유저노릇 하느라고…

 Posted by at 1:58 PM

여관에서 시작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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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22010
 

여관에서 시작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 비화
전자신문 | 입력 2010.11.22 14:03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대전

[쇼핑저널 버즈]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학교보다 더 비싼 학비를 자랑하는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를 다녔다.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 어머니회에서는 바자회를 열어 3,000달러의 수익을 냈는데 이 돈으로 학생들을 위해 컴퓨터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학교에 설치된 컴퓨터를 보고 완전히 매료된 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바로 빌 게이츠다. 빌 게이츠는 자신의 온 열정을 쏟아 부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익힌다. 실력으로도 학교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데 그보다 한 단계 위의 실력을 보여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폴 알렌이었다. 폴 알렌 역시 빌 게이츠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는데 둘은 컴퓨터라는 공통된 화제를 통해 급속도로 친해졌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는 이용시간에 따라 돈을 내는 종량제 방식이었다. 폴 알렌과 빌 게이츠가 실습실에서 과도하게 컴퓨터를 이용하는 바람에 어머니회에서 확보한 자금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학교에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없게 되자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은 직접 컴퓨터 회사를 방문해서 버그를 찾아주는 조건으로 컴퓨터를 공짜로 이용하게 해달라고 했다. 컴퓨터 회사는 10대 소년들이 다짜고짜 컴퓨터를 이용하게 해달라는 이야기에 어이가 없었지만 빌 게이츠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컴퓨터에 자신감을 얻은 빌 게이츠는 자신의 실력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던 중 인포메이션서비스라는 회사에서 직원들의 월급을 계산해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달라고 의뢰한다. 3개월 동안 개발한 끝에 1만 달러의 수고비를 받은 빌 게이츠는 자신의 실력에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인텔 CPU를 이용해 고속도로에 돌아가는 자동차 숫자를 컴퓨터로 계산해내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2만 달러에 판매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빌 게이츠에게 수업시간표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때 빌 게이츠는 여학생으로만 이루어진 반을 구성한 후 남자는 자신 혼자만 출석하는 시간표를 만들며 학창 시절을 즐겁게 지내기도 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로만 이미 4년 동안 다닐 대학교 학비를 모두 번 빌 게이츠는 변호사인 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에 하버드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학교생활에 흥미가 없었고 매일 친구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포커를 즐겼다.

빌 게이츠는 타고난 승부사답게 포커게임에서도 항상 이겼는데 이때 딴 돈은 나중에 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는데 창업자금으로 쓰였다. 이때 포커게임에서 만난 친구가 현 마이크로소프트의 CEO인 스티브 발머였다.

빌 게이츠의 운명은 1975년 발행된 잡지인 파퓰러일렉트로닉스로 변화한다. 폴 알렌은 길을 걷다 우연히 세계 최초의 소형 컴퓨터가 탄생했다는 파퓰러일렉트로닉스 기사를 보고는 즉시 하버드대학교의 빌 게이츠를 만나러 간다. 잡지를 보고난 후 빌 게이츠는 이제 본격적으로 컴퓨터 시대가 오게 됐음을 직감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모든 가정의 책상 위에 컴퓨터가 놓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게 되면 컴퓨터 산업도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게 될 것이고 수많은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빌 게이츠는 바로 그런 시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기대하는 법조인의 바람도 포기하지 못한 채 대학은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세계 최초의 소형컴퓨터 알테어 8800이 등장하자 다른 사람에게 이런 기회를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가 엄습해오자 빌 게이츠는 과감하게 컴퓨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한다.

빌 게이츠는 알테어 8800을 개발한 MITS에 전화를 걸어 알테어 8800을 위한 베이직을 개발해주겠노라고 제안한다. 이미 MITS에는 미국전역에서 수많은 프로그래머들이 빌 게이츠와 똑같은 제안을 했다. 그래서 MITS는 가장 먼저 베이직을 개발해온 사람에게 계약 우선권을 주겠다고 했다.

이에 빌 게이츠는 폴 알렌과 함께 대학 컴퓨터 실습실에서 베이직 개발에 들어갔다. 8주 동안 컴퓨터 실습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베이직 개발에 몰두했다. 그리고 폴 알렌이 MITS 본사가 있는 뉴멕시코로 날아가 그들이 개발한 베이직을 보여준다. 처음 알테어 8800에서 실행할 때 폴 알렌은 혹시나 오류가 날까 걱정했지만 놀랍게도 알테어 8800은 완벽하게 작동했고 결국 MITS와 베이직 공급 계약을 맺는다.

이 때 빌 게이츠는 MITS 근처의 여관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다. 현재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라는 용어가 비교적 친숙하지만 빌 게이츠가 회사를 창업할 때만해도 소프트라고 하면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창업하자 사람들은 작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로 알 정도였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명은 빌 게이츠가 얼마나 미래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컴퓨터하면 대형컴퓨터를 생각하던 시절에 소형컴퓨터 시대를 예견했으며 컴퓨터를 구입하면 소프트웨어를 얹혀주는걸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에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만 따로 판매하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에서 같이 컴퓨터를 연구했던 친구들을 속속 합류시켜 회사의 체계를 잡아간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창업 첫해에 1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고 다음해에는 2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MITS의 더딘 생산 시스템에 불만이 많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MITS의 컴퓨터가 한대씩 팔릴 때마다 로열티를 받았는데 문제는 MITS는 생각보다 작은 회사라 폭증하는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MITS의 더딘 생산 시설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치명적이었다. MITS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 베이직을 납품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독점 공급 계약 항목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1977년 빌 게이츠는 오랜 고심 끝에 계약서에 제시된 충실한 마케팅 이행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MITS와 계약 파기를 선언한다. 처음 MITS는 이제 20대 초반인 빌 게이츠가 소송을 걸자 노발대발했다. MITS는 어린 빌 게이츠를 얕잡아 봤지만 그의 아버지는 시애틀에서 유명한 변호사였고 하버드대학교에서 법학과를 다녔던 사람이었다.

법정으로 간 분쟁은 빌 게이츠의 완승으로 결론이 난다. 사실 여기에도 빌 게이츠의 법적지식이 한몫했다. 처음 계약서를 쓸 때는 계약 파기에 대한 내용이 없었지만 계약서를 면밀히 살펴보던 빌 게이츠는 계약서 마지막에 MITS가 베이직 판매를 위한 마케팅에 최선을 다한다는 항목을 추가했다. MITS는 아무렇지 않게 빌 게이츠의 의견을 들어줬는데 이때 넣은 계약서 항목이 마이크로소프트를 MITS의 그늘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빌 게이츠가 MITS와의 계약을 파기한 결단 역시 적절했다. 법정에서 승소하던 해에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은 100만 달러였지만 이듬해에는 4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MITS와 계약을 청산한 빌 게이츠는 더 이상 뉴멕시코에 있을 필요가 없어져 회사를 자신의 고향인 시애틀로 옮기게 된다. 이후 회사는 더욱 승승장구했고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에 이르게 됐다.

 Posted by at 4:32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