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222010
 

여관에서 시작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 비화
전자신문 | 입력 2010.11.22 14:03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대전

[쇼핑저널 버즈]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학교보다 더 비싼 학비를 자랑하는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를 다녔다.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 어머니회에서는 바자회를 열어 3,000달러의 수익을 냈는데 이 돈으로 학생들을 위해 컴퓨터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학교에 설치된 컴퓨터를 보고 완전히 매료된 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바로 빌 게이츠다. 빌 게이츠는 자신의 온 열정을 쏟아 부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익힌다. 실력으로도 학교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데 그보다 한 단계 위의 실력을 보여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폴 알렌이었다. 폴 알렌 역시 빌 게이츠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는데 둘은 컴퓨터라는 공통된 화제를 통해 급속도로 친해졌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는 이용시간에 따라 돈을 내는 종량제 방식이었다. 폴 알렌과 빌 게이츠가 실습실에서 과도하게 컴퓨터를 이용하는 바람에 어머니회에서 확보한 자금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학교에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없게 되자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은 직접 컴퓨터 회사를 방문해서 버그를 찾아주는 조건으로 컴퓨터를 공짜로 이용하게 해달라고 했다. 컴퓨터 회사는 10대 소년들이 다짜고짜 컴퓨터를 이용하게 해달라는 이야기에 어이가 없었지만 빌 게이츠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컴퓨터에 자신감을 얻은 빌 게이츠는 자신의 실력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던 중 인포메이션서비스라는 회사에서 직원들의 월급을 계산해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달라고 의뢰한다. 3개월 동안 개발한 끝에 1만 달러의 수고비를 받은 빌 게이츠는 자신의 실력에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인텔 CPU를 이용해 고속도로에 돌아가는 자동차 숫자를 컴퓨터로 계산해내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2만 달러에 판매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빌 게이츠에게 수업시간표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때 빌 게이츠는 여학생으로만 이루어진 반을 구성한 후 남자는 자신 혼자만 출석하는 시간표를 만들며 학창 시절을 즐겁게 지내기도 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로만 이미 4년 동안 다닐 대학교 학비를 모두 번 빌 게이츠는 변호사인 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에 하버드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학교생활에 흥미가 없었고 매일 친구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포커를 즐겼다.

빌 게이츠는 타고난 승부사답게 포커게임에서도 항상 이겼는데 이때 딴 돈은 나중에 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는데 창업자금으로 쓰였다. 이때 포커게임에서 만난 친구가 현 마이크로소프트의 CEO인 스티브 발머였다.

빌 게이츠의 운명은 1975년 발행된 잡지인 파퓰러일렉트로닉스로 변화한다. 폴 알렌은 길을 걷다 우연히 세계 최초의 소형 컴퓨터가 탄생했다는 파퓰러일렉트로닉스 기사를 보고는 즉시 하버드대학교의 빌 게이츠를 만나러 간다. 잡지를 보고난 후 빌 게이츠는 이제 본격적으로 컴퓨터 시대가 오게 됐음을 직감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모든 가정의 책상 위에 컴퓨터가 놓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게 되면 컴퓨터 산업도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게 될 것이고 수많은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빌 게이츠는 바로 그런 시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기대하는 법조인의 바람도 포기하지 못한 채 대학은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세계 최초의 소형컴퓨터 알테어 8800이 등장하자 다른 사람에게 이런 기회를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가 엄습해오자 빌 게이츠는 과감하게 컴퓨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한다.

빌 게이츠는 알테어 8800을 개발한 MITS에 전화를 걸어 알테어 8800을 위한 베이직을 개발해주겠노라고 제안한다. 이미 MITS에는 미국전역에서 수많은 프로그래머들이 빌 게이츠와 똑같은 제안을 했다. 그래서 MITS는 가장 먼저 베이직을 개발해온 사람에게 계약 우선권을 주겠다고 했다.

이에 빌 게이츠는 폴 알렌과 함께 대학 컴퓨터 실습실에서 베이직 개발에 들어갔다. 8주 동안 컴퓨터 실습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베이직 개발에 몰두했다. 그리고 폴 알렌이 MITS 본사가 있는 뉴멕시코로 날아가 그들이 개발한 베이직을 보여준다. 처음 알테어 8800에서 실행할 때 폴 알렌은 혹시나 오류가 날까 걱정했지만 놀랍게도 알테어 8800은 완벽하게 작동했고 결국 MITS와 베이직 공급 계약을 맺는다.

이 때 빌 게이츠는 MITS 근처의 여관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다. 현재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라는 용어가 비교적 친숙하지만 빌 게이츠가 회사를 창업할 때만해도 소프트라고 하면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창업하자 사람들은 작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로 알 정도였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명은 빌 게이츠가 얼마나 미래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컴퓨터하면 대형컴퓨터를 생각하던 시절에 소형컴퓨터 시대를 예견했으며 컴퓨터를 구입하면 소프트웨어를 얹혀주는걸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에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만 따로 판매하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에서 같이 컴퓨터를 연구했던 친구들을 속속 합류시켜 회사의 체계를 잡아간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창업 첫해에 1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고 다음해에는 2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MITS의 더딘 생산 시스템에 불만이 많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MITS의 컴퓨터가 한대씩 팔릴 때마다 로열티를 받았는데 문제는 MITS는 생각보다 작은 회사라 폭증하는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MITS의 더딘 생산 시설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치명적이었다. MITS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 베이직을 납품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독점 공급 계약 항목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1977년 빌 게이츠는 오랜 고심 끝에 계약서에 제시된 충실한 마케팅 이행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MITS와 계약 파기를 선언한다. 처음 MITS는 이제 20대 초반인 빌 게이츠가 소송을 걸자 노발대발했다. MITS는 어린 빌 게이츠를 얕잡아 봤지만 그의 아버지는 시애틀에서 유명한 변호사였고 하버드대학교에서 법학과를 다녔던 사람이었다.

법정으로 간 분쟁은 빌 게이츠의 완승으로 결론이 난다. 사실 여기에도 빌 게이츠의 법적지식이 한몫했다. 처음 계약서를 쓸 때는 계약 파기에 대한 내용이 없었지만 계약서를 면밀히 살펴보던 빌 게이츠는 계약서 마지막에 MITS가 베이직 판매를 위한 마케팅에 최선을 다한다는 항목을 추가했다. MITS는 아무렇지 않게 빌 게이츠의 의견을 들어줬는데 이때 넣은 계약서 항목이 마이크로소프트를 MITS의 그늘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빌 게이츠가 MITS와의 계약을 파기한 결단 역시 적절했다. 법정에서 승소하던 해에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은 100만 달러였지만 이듬해에는 4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MITS와 계약을 청산한 빌 게이츠는 더 이상 뉴멕시코에 있을 필요가 없어져 회사를 자신의 고향인 시애틀로 옮기게 된다. 이후 회사는 더욱 승승장구했고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에 이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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