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092014
 

우리는……

우리는 ‘흑백 티비’에 다리가 달려 있었고, 미닫이 문도 달렸던 걸 기억합니다.
우리는 어린시절 ‘김일 선수’와 ‘여로’의 열풍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부엌에 나가 ‘연탄 아궁이’에 밥하시던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아침밥을 먹자마자 동네로 뛰어나가 친구들과 ‘찜뽕, 고무줄 놀이’를 하며 놀았습니다
우리는 해가 져 어두울 때까지 형 누나들과 ‘팽이, 딱지와 구슬치기, 다방구, 막대’ 등을 하며 놀았습니다.

우리는 동사무소에서 대통령은 영원히 박정희,
구국의 영도자인 줄 알았는데
어느날 전두환씨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밤 12시 넘어서 바깥에 돌아다녀도 된다고 좋아하던 어른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를 다녔습니다.
우리는 ‘오후반’이 있던 날은 늦잠을 잘 수 있다고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하교길에 ‘애국가’가 울려퍼지면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가던 길을 멈춰섰습니다.

우리는 랩(lap)으로 눈을 감싸고 마스크를 쓴 채 화염병을 던지는 대학생들도 보았습니다.
우리는 ‘아시안게임’을 통해서 잠실이라는 동네를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는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임춘애’에게 열광하던 찌라시 기자들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쇼 비디오쟈키’에 나오는 뮤직비디오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우리는 고교시절 군인들처럼 ‘교련복’을 입고 군인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습니다. 빨갱이가 쳐들어 오는줄만 알았거든요.

우리는 올림픽을 보면서 ‘손에 손잡고’를 따라 불렀습니다.
우리는 ‘영웅본색’의 주윤발이 한국에 와서 ‘싸랑해요 밀키스~’라고 하는걸 봤습니다.
우리는’천녀유혼’의 왕조현이 한국에 와서 ‘반했어요 크리미’라고 하는걸 봤습니다.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했습니다.
우리는 2000원짜리 음료권을 사서 디스코텍도 가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랜드, 브렌따노, 헌트, ‘가 국가기업인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성문기본영어”수학의정석’를 마스터하기 위해서 단과학원을 다녔습니다.
우리는 매점에서 ‘승차권’을 다발로 구입하고 그걸 아끼려고 직접 그리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테이블에서 술 마시며 그 자리에서 춤을 춘다는 ‘락카페’가 참 신기했습니다.

우리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가 무척 놀라웠습니다.
우리는 한국이 죽었다 깨어나도 ‘아이와’같은 카세트를 못 만들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되는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엄정화의 ‘눈동자’가 수술한 눈인줄 몰랐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이러브 스쿨을 졸업하고
다시 밴드로 모여 서서히 중독되어가며
이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매 해  찾아오는 추위에도 싫증 안내고
늘 해 마다 오는 한살의 나이에도 이제는
별 감흥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덧 오십대입니다.
그래도 넥타이 부대고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는데  비겁한 한세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식에겐 공부를 강요하고 일주일내내
얼굴한번 못봐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얄팍한 선택이 이처럼 부끄러운 결과를 가져 올지는 몰랐습니다.

머리엔 염색약을 발라야 조금 젊게 보일까 걱정하면서 배우자의 눈치를 봅니다.
조금 부끄럽지 않고 싶습니다.
자식에겐 미안함이 없고 싶었는데
세상은 그렇게 되지 않은채 아웅다웅 흘러갑니다.
부끄럽지 않은 오십대이고 싶은데 말입니다.
봄이 오는 가슴은 아직도  뜨겁고 싶은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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