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062012
 

방치되는 故人의 블로그·홈피 “디지털 유산 어찌할꼬”

“노오란 꽃이 피는 봄에 떠나신 님이여…

무엇이 그리 급하시고 또 당신을 힘들게 하셔서 급하게 떠나셨나요… 현명하고 현자의 모습을 하고 계신 당신이 더욱 그립습니다.”(사람사는 세상 홈페이지 추모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23일)를 앞두고 고인의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추모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추모식을 앞두고 각종 행사에 대한 정보들과 함께 하루 평균 방문자가 3만명이 넘는다. 노 전 대통령의 전용 게시판에는 ‘사람세상 홈페이지를 닫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2009년 4월 22일 노무현)’라는 제목 위에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노 전 대통령의 글들이 업데이트되어 있다.

고 노 전 대통령 전용 게시판, 천안함 사고로 숨진 용사들의 미니홈피, 고 최진실씨 미니홈피 등에는 지금도 고인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추모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운영자가 없는 현실에서 사이트의 운영이 순조로울 리가 만무해 추모객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도 인터넷 이용자가 갑작스런 사고로 사망했을 때 개인의 블로그와 이메일, 금융자산을 양도할 수 있는 ‘디지털 유산’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사이트를 개설한 운영자가 사망했을 때 이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경우 정보통신망법 21조와 49조, 통신비밀보호법 1005조 및 관련 판례에 의해서 본인 외에 제3자가 양도받아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메일과 블로그 등은 6개월 이상 접속하지 않는 경우 사이버 공간에 접근이 제한되는 점을 감안해 유족들이 포털사에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요청해도 법적인 문제로 공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문제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디지털유산. 실제로 최근 미국에서는 사망한 인터넷 이용자의 블로그와 이메일, 금융자산을 양도할 수 있는 디지털 유산 전문회사인 인트러스테트가 문을 열었다. 이용자가 생전에 갑작스럽게 사망했을 때 가족 또는 제3자에게 양도할 것을 지정하면 사망 후 관련 정보를 양도받는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국내 포털업체 관계자는 “이제 우리나라도 디지털 유산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이미 일부 포털사는 유명인이 갑작스런 사고로 사망한 경우 고인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악플을 삭제하고 게시판을 영구 보존해주는 활동을 시작했다. 가족이나 지인들이 사이버상에 관련 자료들을 백업해줄 것을 요청할 경우 비공개 게시물을 제외한 모든 정보를 백업해서 전달해주거나 유가족이 삭제을 요청할 경우 계정을 삭제해주기도 한다.

고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있는 신민희씨는 “‘사람사는 세상’은 고인이 생전에도 관리자들과 함께 운영했기 때문에 유지가 가능하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면 하루 평균 방문자가 30만명까지 증가한다”고 말했다.

포털업계 관계자는 “한국도 미국처럼 이메일 이용자나 블로그, 미니홈피 등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개인의 유산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정보통신망법이나 여러 가지 법에 저촉되는 것이 많아 운영방침을 바꿀 수 없다”며 “인터넷 이용자가 70%를 넘는 시대에 우리나라도 디지털 유산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는 유가족들이 팩스 등을 통해 가족관계증명서를 보내오면 가족의 요구에 따라 폐지만 가능하고 유족이라도 자료 열람은 허용되지 않는다”면서 “사이버 공간을 영구적으로 보존하거나 데이터 백업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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