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인터넷은 미국의 소유였다. 미국 국방부에서 시작된 인터넷은 전 세계인이 사용하고 누구나 개발 가능한 만인의 인터넷이 되었지만, 인터넷 주소(IP주소와 도메인)를 관리하는 핵심 기능은 아직까지 막후에서 미국 정부가 조종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 갑자기 이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인터넷 주소를 독점적으로 관리하던 권한은 미국이 인터넷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절대 포기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었다. 이번 결정의 표면적 이유는 인터넷의 자유와 개방을 촉진하기 위해서라고 미 상원의원인 록펠러 (Rockefeller)는 말한다.
인터넷주소기구인 ICANN 의장은 인터넷 주소를 관리하는 기능을 국제 기구에 넘기기 위해 미국 정부는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들이 인터넷의 자유를 위해 그들의 권한을 포기했다고 보기에는 그 동안 미국 정부가 이 권한을 지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ICANN은 미국이 만든 편법 단체
미국 상무부 산하 국가통신정보청(NTIA)은 내년 9월 30일로 계약이 만료되는 ICANN과 계약 연장하지 않고 IP주소와 도메인에 대한 정책을 관리하는 권한을 국제 단체에 넘기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미 상무부는 과거 인터넷 도메인과 주소 정책을 직접 관리하고 있었는데 국제 사회에서 그 권한을 국제 단체로 넘길 것을 요구하자 1998년 6월 ‘인터넷 주소 운영에 관한 백서’를 통해 ICANN을 만들었다.
국제 단체로 명목상 국제적 합의를 통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 상무부와 계약을 해 위임 받은 권한을 행사하며, 미 상무부에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미 정부 아래서 운영되고 있다. 미국이 이런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IP 주소와 도메인 등의 관한 정책을 주도하고 싶었던 것은 그 만큼 이 기능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인터넷 전반에 대한 정책을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인터넷을 영향력 아래 두고 싶어했다
역사적으로 미국 정부가 인터넷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IP주소와 도메인 정책 관리 권한에 얼마나 집착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존 포스텔’ 사건이 있다. 존 포스텔은 초기 인터넷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과학자로 도메인 기술을 개발했다.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IANA에 근무하며 도메인과 IP 정책을 그가 대부분 설계하고 관리했다. 하지만, 인터넷의 중요성이 커지자 미국 정부는 자신들의 비용으로 인터넷이 연구 개발 되었다는 명분으로 도메인과 IP 정책에 대한 권한을 그에게서 빼앗아 가져가 버렸다.
이에 존 포스텔은 TCP/IP를 개발해 인터넷의 아버지로 추앙 받고 있는 빈트서프 (Vinton Gray Cerf) 등 초기 인터넷 과학자들을 모아 1992년에 ‘인터넷 소사이어티’라는 인터넷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범세계적인 민간 단체를 만들려고 했다.
지금 미 정부가 결정한 것처럼 존 포스텔은 IP주소와 DNS 같은 중요 정책 결정은 미 정부와 독립된 국제적 단체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터넷 소사이어티는 IP주소와 도메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전세계 주요 상표권자들과 협력하기로 하였으며 미국 대형 통신사인 MCI와 대형 IT 기업인 디지털이큅먼트 등과도 협력을 해 미국 정부로부터 인터넷을 독립시키려고 했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인터넷 소사이어티의 활동과 그들의 협약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항의해 존 포스텔은 자신의 컴퓨터를 전 세계 인터넷의 루트 서버로 바꾸는 도발을 감행했다. 미국 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존 포스텔을 압박했고, 이에 위기를 느낀 그는 루트 서버를 다시 미국 정부로 돌려 놓았다.
하지만 이때 미 정부로 받은 협박에 극심한 스트레스로 시달리다 9 개월 후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존 포스텔 사건 이후 미국 정부는 주요 인터넷 정책은 자신들이 결정할 것을 공식 선언하며 법으로 명문화했다.
■ICANN을 통해 비판을 피해 가려고 했다
하지만, 세계는 더 이상 미국만의 인터넷이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제사회가 IP주소와 도메인 관리 권한을 국제 단체에 넘기라고 요구하자 ICANN을 만들어서 이 요구를 피해 가려고 했다. 국제사회는 미 상무부와 계약을 통해 생긴 ICANN을 진정한 국제 기구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ICANN은 미국 상무부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비비안레딩’ EC 정보기술집행위원장은 ICANN와 미국 상무부 간 운영 협력 계약이 만료되면 양측이 더 이상 접촉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중국은 한발 더 나아가 도발을 감행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중국은 이미 인터넷 세상에서 무시 할 수 없는 존재이다. 세계 1위 검색 사이트는 구글이지만 2위 자리를 높고 야후와 중국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가 경쟁을 할 정도로 중국은 성장했다.
이미 인터넷 이용자수는 중국이 미국을 앞질렀다. 2006년 3월 중국은 com, net 등을 자신들의 언어로 호환 연결시키는 도발을 감행하며 미 정부와 ICANN에 정면 도전했다.
■미국은 자유를 핑계로 거부했다
미국은 ‘인터넷 자유’라는 명분을 통해 이런 요구사항을 그 동안 교묘하게 벗어 나려고 했다. 각 국가들이 이 문제를 이슈화 하며 미 정부와 논의하자고 하면 인터넷 자유를 내세워 정부와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자유와 검열 등을 교묘하게 인터넷 주소 문제와 연결 시켰다. 하지만, 불평등한 세상에서 자유를 이야기 하는 것은 불평등한 세상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기득권을 가진 쪽에서 흔히 내세우는 고도의 전략이다. 자유는 사회적 약자인 개인이 강자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을 자유이지 강국이 다른 국제 단체의 간섭을 받지 않을 자유는 아니다.
미국이 절대 내려 놓지 않을 거 같던 기득권을 갑자기 내려 놓겠다고 결정을 한 이유는 스노든 폭로 이후 국제사회에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 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국제 사회에 압력이 강했다고 해도 그들이 인터넷 주도권을 유지 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을 경우 절대 포기 하지 않았을 것이다.
IP주소와 도메인 정책에 대한 권한을 포기해도 인터넷에 대한 주도권을 잃지 않으며 그들이 원하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이번 결정을 가능하게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미국 인터넷 기업이 ICANN 포기를 가능케 했다
국제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복잡한 정책들을 독점적으로 행사하기는 어려워지고 있지만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은 ICANN을 만들던 1998년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졌으며 이들의 영향력은 우리 삶 깊은 곳까지 침투해 있다.
스마트폰 운영체제와 검색은 구글, PC 운영체제와 업무용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 데이터베이스는 오라클, PC와 서버 제조는 HP와 델, 정보기술 컨설팅은 IBM, 네트워크는 시스코, 저장 기술은 EMC와 웨스턴디지털, 모바일은 애플 등 IT에 핵심 기술은 모두 미국 기업들이 독식하고 있다.
민간 기업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인터넷 주도권을 유지 할 수 있기에 상대적으로 정책 부분이 유연해진 것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전 세계 주요 정부, 기업, 개인들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으며 이 정보를 구글을 통해 분석을 하고 있어 겉으로는 미국이 인터넷 패권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실로는 인터넷과 인터넷 이용자들의 대한 지배력을 넓혀 나가고 있다.
필요할 경우 미 정부는 은밀하게 자국 기업에게 협조를 요청하면 된다. 스노든이 폭로하고 비즈니스인사이더가 기사화 한 것처럼 페이스북, 구글, 야후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인터넷 기업은 미국 정보 기관이 쓸 수 있는 별도의 방법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 정부는 아이디, 이메일 주소, 계정을 만든 날짜와 시간, 최근 2~3일간 로그인 내용, 이용자 휴대폰번호, 이용자 연락처 정보, 미니피드, 글을 업데이트한 이력, 공유 또는 공지한 글, 게재한 글, 친구목록, 그룹목록, 과거 또는 앞으로 개최할 이벤트, 동영상과 사진,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메시지, 접속한 컴퓨터 위치정보 등을 제공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이미 미국은 인터넷을 통한 도감청 수준이 완성 단계에 이르고 있는 것도 이번 결정을 한 큰 원인으로 뽑을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흐르는 정보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것도 미국이 ICANN 없이도 주도권을 유지 할 수 있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유타주 북동부의 블러프데일은 인구 만명 미만의 산골이다. 여기에 미국은 20억원 (2조 2000 억원)을 들여 유타 데이터 센터 (UDC)라는 이름의 데이터센터를 건설했다. 각종 위성과 해저 케이블 등을 통해 미국에 들어오는 인터넷 정보와 통신 기록 등 모든 디지털 정보를 저장한다. 전문학적인 데이터 저장 능력을 가지고 있어 전 세계 모든 데이터를 100년 동안 저장 할 수 있다.
가디언 기사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환대서양 통신 케이블을 해킹해 전세계 이메일, 인터넷 사용기록, 전화통화 등을 도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하고 있다. MVR(Massive Volume Reduction)이라는 고성능 필터를 이용해 일반적인 내용은 버리고 특정 주제, 특정 인물에 관련 된 내용만 집중 분석하는 기술도 가지고 있다.
오래 시간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이 미국 정부로부터 독립 해 진정으로 자유로운 공간이 될 수 있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미국이 인터넷을 자유롭게 해 준 것은 역설적으로 인터넷이 더 이상 자유 공간일 수 없다는 것을 확인 시켜 주는 일이 되었다.